흙 밟기 어려운 세상
흙 밟기 어려운 세상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2.26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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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칼럼
박완희 <원흥이생명평화회의 사무국장>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시골에 눈이라도 내리면 동네 아이들이 모두 나와 마을길 눈을 치웠다. 이 길을 따라 5리, 10리 학교를 다녀야 했고, 이웃집들과 왕래를 했다. 이 길은 흙길이라서 눈을 치우지 않으면 얼마 후에는 길이 질어져 통행이 불편하게 된다. 이런 시골길이 불편함 때문에 콘크리트 길로 바뀌고, 지금은 아스팔트 길로 바뀌었으며 심지어 길 옆 도랑마저 콘크리트 수로가 되어 버렸다.

시골이 이러할진대 도시는 어떨까? 아파트에 살건, 단독주택에 살건 하루 중에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길 이외에 흙길을 걷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현실이다. 흙을 밟지 않으니 흙의 기운을 느끼며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올레길, 둘레길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이런 길을 만들고 있다.

도시의 아이들이 흙을 밟으며, 흙을 만지며 놀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 바로 학교 운동장이다. 그런데 그나마 남아 있는 흙 운동장이 인조잔디와 우레탄 트랙으로 바뀌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인조잔디 학교운동장 조성사업을 5개년 계획으로 추진했다. 초기 인조잔디운동장 조성사업은 유해성, 안전성, 선택권 등의 논란이 많아서 수도권의 여러 지역에서 학부모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교과부에서 2009년부터 인조잔디학교운동장 조성사업을 '다양한 학교운동장 조성사업'으로 변경하여 실시한 것이다.

인조잔디, 천연잔디, 마사토 흙운동장의 선택권을 학교에 주어 학교구성원과 지역주민의 의견수렴을 거쳐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도였다. 이런 교과부의 변화된 지침에 대해 아직 일선 시, 도교육청에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샛별초 인조잔디 운동장 조성을 둘러싼 갈등 문제다.

2010년 교과부로부터 지원을 받은 학교는 산남중학교였다. 산남중학교는 마사토 흙운동장을 하려 했으나 청주교육지원청에서는 여러 이유로 마사토 흙운동장이 아니라 인조잔디운동장으로 추진하려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산남중 마사토 운동장 조성사업은 포기되었고, 샛별초가 인조잔디운동장 추진학교로 선정되었다. 결국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았고 예산이 통과된 후에 학부모에게 인조잔디운동장 설문조사가 진행되어 72.6%의 학부모가 찬성한다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샛별초 학부모와 학군주민을 대상으로 자체설문조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학부모의 83.5%가 인조잔디운동장을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제대로 된 정보제공이 없이 진행된 학교 설문조사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충북도의회의 행정사무감사 결과에서도 샛별초 운동장 조성사업은 학부모 지역주민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다시 한 번 거쳐 생태마을 위상에 걸맞은 갈등 없는 운동장 조성이 되게 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절차상의 문제 외에도 인조잔디운동장 조성사업은 경제성에도 적합하지 않다. 서울시 자료에 의하면 4000㎡를 깐다고 할 때 설치비용이 4억원 정도 소요되며, 관리비와 교체비용이 7년 단위로 3억원 이상 한 학교에 소요된다고 한다. 전국에 1000개의 인조잔디운동장을 깐다고 할 때 7년마다 3000억이라는 엄청난 예산이 인조잔디운동장으로 투입되어야 한다. 과연 운동장을 위해 무엇 때문에 이런 예산을 쏟아 부어야 하는지 타당성 있는 사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인조잔디운동장을 설치한 후에는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조차 학교운동장에서 탈 수 없다. 안전성 문제도 기술이 좋아졌다고 하나 지금까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제주도교육청은 인조잔디를 깔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당국은 흙 밟기 어려운 세상에서 다수의 학부모들이 반대하고, 절차상 문제가 있는 인조잔디운동장으로 인해 아이들의 흙 밟을 권리를 빼앗지 말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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