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수기 공모 금상에 오창근·박재수씨
남편 수기 공모 금상에 오창근·박재수씨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1.3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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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여성인력개발센터 9일 시상
청주YWCA여성인력개발센터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남편 수기를 공모했다.

공모에서 금상에 오창근(전어 회 가시가 목에 걸린 날)·박재수씨(여보, 어떻게 해?)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은상에는 임호성(당신의 미소가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정창권씨(생각의 차이), 동상에는 박은교(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박정수(내 아내 김유세)·백득흠(우리 부부는 이렇게 살아요)·오임택(주부가 아닌 주부, 반주부)·이범혁씨(행복을 만드는 가족)가 선정됐다.

가작에는 권휘·김용희·신희준·박찬규·이영재·홍기백씨 등 15명이다.

시상식은 9일 청주YWCA여성인력개발센터 3층 강당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 여보, 어떻게 해?

남편 수기 공모 금상작

<중략>

이제 내 아내가 일을 시작한 지 벌써 3년에 접어든다. 내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그 시간은 나와 아내의 생활 전반을 업그레이드 한 시간들로 값진 양식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내는 누구의 엄마 누구 부인 하는 3인칭 명사에서 그녀만의 이름을 찾게 되었고, 만년주부의 무의미한 생활 패턴에 미래를 설계하고 다듬을 줄 아는 기교가 생겼다. 남편 흉이나 보고 수다가 전부였던 그녀에게 전문용어가 술술 나오고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얻는 일반 상식이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대화를 만들고 있었다.

하루는 반찬이 없다면서 남편에게도 신경을 써 달라는 나의 투정에 "여보? 내가 집에서 노는 사람이야? 나도 정신없이 바쁘거든요. 반찬 투정 하지 마시고 스스로 알아서 챙겨 먹는 노력 좀 하세요."라고 했다. 이럴 수는 없었다. 아내가 하루아침에 가장의 권위에 당당한 목소리로 도전하는 것이 아닌가? 아내의 변화는 내게 곧 시련 아닌 시련이었다. 아내의 근무 시간에 비해 자유로운 시간이 많은 나는 아내 역할을 억지로 도맡게 되었던 것이다.

"이놈의 마누라. 스타킹은 둘둘 말아서 벗어 놓지 말라고 해도 징글맞게 말을 안 들어" 하는 혼잣말이 늘었고 압력밥솥이긴 하지만 아내보다 밥도 잘하고 집안일 잘하는 도사가 되어 버렸다. 가끔은 아이들 간식거리도 손수 만들어 주어야 했고 비가 오는 날이면 아내를 마중 나가기까지 해야 했다. 졸지에 나는 주부 아닌 주부로 서서히 길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은 '조선시대 양반 댁 선비가 설마 밥하고 설거지야 하겠어'하며 비웃어 맞이하지만 나는 떳떳하게 습진 걸린 손가락을 보여주곤 했다. 때로는 가사분담이 짜증 날 때도 있고 시간 없다는 핑계로 내게 소홀하다며 투정을 하지만 나는 아내의 변화에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경제적인 부담을 덜게 된 것도 한몫하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직장 생활을 하던 아가씨의 모습에 반해서 졸졸 따라다녔던 그 옛 모습을 결혼 생활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의 되풀이다.

40대의 아줌마가 되어 버렸지만 내겐 언제나 바쁘게 움직이고 직장 걱정하며 스스로의 노력으로 내 일을 얻은 그녀가 아직까지는 아가씨처럼 새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주부가 무슨 일이냐며 시부모의 반대도 있었고, 자기 일을 가지면서 시부모 찾아뵙는 시간이나 집안일의 대소사에 참석 못하는 며느리가 되었지만 세상은 변한다 했지 않은가? 모처럼 찾아뵙는 아버지의 입에서 "일하느라고 고생하는데 너무 자주 오지 마라. 그래 하는 일은 힘들지 않고? 네가 많이 도와주어라. 요즘 맞벌이 안 하는 집이 어디 있어?" 전형적인 대쪽 영감님의 마음까지 아내는 바꾸어 놓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바쁘다. 창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침대정리, 아이들 옷가지, 장난감 정리에 청소기로 거실을 누비고 걸레로 닦고 나면 두 시간 정도 소비되는 것 같다. 그러나 난 그 시간이 아깝거나 지루하지 않다. 내 성격이 천성적으로 내성적이고 조목조목 작은 일에 야무진 손 맵시가 있는 탓은 아니다. 그 시간의 투자가 주는 기쁨은 아내가 자신만의 자유 영역 속에서 빛을 발하는 모습이 보람으로 다가서는 것처럼 내게 보람인 것이다.

신선함이 머리 깃을 스치는 가을바람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 잔의 뜨거운 김을 불면서 마시는 여유로움도 어떻게 보면 아내만큼이나 값진 시간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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