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가 비웃는 '인권추락'
국제사회가 비웃는 '인권추락'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05.31 2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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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편집부국장

제3세계의 롤모델이 됐던 대한민국 인권의 급락을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심상찮다.

유엔 인권위원회 프랭크 라 뤼 특별보고관은 최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이후 2년간 한국의 전반적인 인권, 그중에서도 특히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돼 왔다"고 밝혔다.

경찰청 등 16개 정부기관과 NGO단체들,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피해자들을 직접 면담 조사하는 등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다.

그는 촛불집회 이후 광장에서의 집회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 중앙선관위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4대강 사업, 무상급식 등 일부 쟁점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로 지적했다.

촛불시위 이후 네티즌의 온라인 활동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형사상 기소가 많아졌다는 점도 우려했다. 라 뤼 보고관은 이 밖에도 우리 정부에 공영방송의 독립성, 공무원들의 의사표현, 선거와 인터넷 상의 의사 표현, 국가의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 등의 개선을 권고했다.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도 지난해 한국의 인권상황이 1년간 크게 후퇴했다는 연례보고서를 냈다. 공권력의 과도한 집행과 표현 및 집회의 자유의 억압을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으로 강조했다.

보고서를 낼 당시까지 불법시위 등과 관련해 경찰에 대한 기소는 3명에 불과한 반면, 국민은 1267명을 기소했다는 수치를 소개하며 '국민에 대한 무리한 기소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엠네스티의 이 같은 지적은 지난해 수차례나 거듭됐다.

한국은 유엔 인권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지난 2008년 3년 임기의 상임이사국에 재선됐다. 80년대 이후 괄목할 만한 인권 증진 성과를 보였다는 국제사회 평가가 재선의 밑거름이 됐다.

이번에 방한 조사를 마친 라 뤼 특별보고관은 조사결과를 인권이사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인권 증진을 선도해야 할 상임이사국이 망신 중에도 상망신을 당할 판이다. 임기가 끝나는 2011년 이후에 상임이사국 지위를 유지할지도 불투명해졌다. 자격론이 불거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라 뤼 보고관이 국내 조사활동 중 기관의 사찰까지 당했다는 대목이다.

그가 숙소인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한 차량에서 정체 불명의 사람들이 몰래 자신을 촬영했고, 차량 번호를 추적한 결과 정보기관 소유의 땅을 주소지로 한 차량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가 인권위원회에 요청한 인권위 상임위원들과의 합동면담도 거부됐다고 한다. 조사에 협조하지는 못할망정 면담조차도 기피한 것은 인권위의 현주소를 그대로 웅변한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당할 망신살은 두 배나 커진다.

국제사회나 유엔에서 당할 치욕은 사실 걱정거리도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인권의 위축에 대한 우려가 내부보다 외부에서 더 강도높게 제기된다는 점이다.

인권 위축을 겪는 당사자들의 체감도가 나라 밖 제3자보다 떨어진다는 얘기다.

민주적 가치의 후퇴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는 것은 아예 그것에 순치되는 것보다 위험하다. 국민의 입을 통제하려는 권력의 입장에서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무저항보다는 개념조차 없는 무감각을 상대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권은 숙명적으로 권력과 대치한다. 우리 현대사를 보더라도 인권이 커지면 권력은 약해지고, 권력이 과도해지면 인권은 고개를 숙였다.

권력의 지나친 군림을 경고하는 국제인권단체의 거듭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파시즘은 늘 인권을 유보하기 위한 그럴듯한 명분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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