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강
5월의 강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5.13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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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문화콘텐츠 기획자>

율량천의 아침이 모처럼 싱그럽습니다.

태양을 등지고 걷는 아침 산책길, 물안개가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작은 개울은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감흥입니다.

요 며칠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았는데도 물이 제법 많은 것을 보니, 저 보이지 않는 상류 쪽에서 농사를 위해 물길을 터놓았나 봅니다. 이제 곧 들녘이 부산해질 테지요.

물길은 참으로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모든 씨앗들이 풍성해지기를 기원하며 오랜만에 힘차게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개울가를 걸어본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가끔씩 수중보라는 이름으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물막이를 만나면 물줄기의 아우성이 더 커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소리는 물 흐름의 위쪽, 그러니까 상류보다는 물이 떨어지는 아래쪽에서 더 크게 들린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평온한 대지를 지나다 갑자기 만나는 굴절에 의해 내팽개쳐지는 물방울들의 신음을 상류에서는 대체로 잘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아래에서 더욱 커지는 물소리는 똑같은 물방울들이 무리를 이루어 들판을 내달리다 함께 곤두박질하는 서러움을 소리로나마 서로 위로하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은 노래합니다.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곱게 지켜

곱게 바치는 땅의 순결.

그 설레는 가슴

보드라운 떨림으로

쓰러지며 껴안을,

내 몸 처음 열어

골고루 적셔 채워줄 당신.

혁명의 아침같이,

산굽이 돌아오며

아침 여는 저기 저 물굽이같이

부드러운 힘으로 굽이치며

잠든 세상 깨우는

먼동 트는 새벽빛

그 서늘한 물빛 고운 물살로

유유히,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섬진강 11 - 다시 설레는 봄날에>

조그만 개울 율량천은 이 봄, 생명을 키울 약속의 물을 가득 담고 내달리다 무심천과 만납니다.

그런데 그 무심천에는 또다시 커다란 수중보가 있고, 지금은 물이 많이 필요한 때인지라 흐름을 막아 놓고 있습니다.

힘차게 흐르던 물이 갑자기 인간이 만든 구조물에 의해 주춤하는 사이 물빛은 탁해지기만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갖가지 냄새가 나기도 해 쪽다리를 무심하게 건너기가 쉽지 않습니다.

풀빛은 갈수록 짙어지는 싱그러운 봄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도 수중보를 넘어서든 아니면 물속 좁은 틈새를 비집고 나가든 물은 기를 쓰며 아래로 흐를 것입니다.

무심천 끝자락에 다다른 물은 미호천과 합쳐지고, 그 물은 미호평야 너른 들을 적시면서 다시 금강과 만나겠지요.

물은 그렇게 흐르면서 단단한 겉껍질을 깨고 터져 나오는 푸르름을 약속할 것이고, 농부들은 그 약속 하나만을 믿음으로 다시 풍성한 가을을 기약할 것입니다.

그나저나 명동성당에서는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23년 만에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의 시국미사가 열렸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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