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이대로만 하면 된다
무상급식, 이대로만 하면 된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5.0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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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문화콘텐츠기획자>

내 지인의 딸은 꿈 많은 여고생이다. 꿈 많은 여고생이라니. 요즘 여고생에게 꿈이 있기는 한 건가. 써 놓고 보니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상투적인 표현인 것 같아 씁쓸하다.

아무튼 그녀는 하루에 적어도 두 끼는 의무적(?)으로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

새벽같이 등교해 아침밥은 거르기가 일쑤고, 점심은 당연히 학교급식으로 해결하며 저녁식사 역시 야간자율학습이다, 보충학습이다, 하는 명목으로 학교에서 때워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가정은 가난하다. 그녀의 아버지, 즉 내 지인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는 현대인이나 시대를 잘못만난 것인지 사람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까닭인지 아직 숨은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하여 어쩔 수 없게 하루에 두 끼씩에 해당하는 그녀의 학교 급식비는 제날짜를 지키지 못하기를 거듭하고, 그마저도 사정이 허락하지 못할 경우는 아예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경우도 있다.

때문에 하루에 두 번씩 그녀의 식사시간은 곤혹스러울 따름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굴하지 않고 늘 상쾌 발랄한 그녀이지만, 밥 먹을 때마다 배식구 앞에서 울리는 "급식비가 미납되었습니다."라는 기계음에는 주눅 들지 않을 수 없다.

눈칫밥이라는 말이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라는 말도 있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티 없이 자라야 할 여고생에게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는 부족함 내지는 곤궁함이 또래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은 치졸하기 그지없는 인권유린과 다름없다.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정치권의 공방이 적어도 충북에서는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도지사와 시장·군수, 도의원과 시·군의회 의원, 그리고 교육감과 교육의원을 뽑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들의 본격 행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당초 포퓰리즘으로 깎아 내리던 기세와는 달리 한나라당의 광역자치단체장 후보가 도내 초·중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전면 무상급식 시행을 공약으로 전격 발표했다.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한 고육지책인지 아니면 의무교육 대상은 당연히 무상급식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헌법정신의 충실한 지킴인지에 대한 판단은 필요 없다.

다만 한 지방신문이 1면에 관련 기사를 편집하면서 '이대로만 실천하면 된다'는 제목을 뽑을 만큼 도민들의 반기는 분위기는 분명하다.

그동안 무상급식 전면실시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했던 정치집단은 가정 형편이 넉넉한, 한마디로 말해 부자부모를 둔 초·중학생들까지 무상으로 밥을 먹이는 일은 형평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논리였다. 심지어 무상급식에서 소위 좌빨의 냄새가 난다는 힐난마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밥 먹는 일조차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차별되는 현실을 학교생활에까지 끌어들이는 결과를 감안할 때 차마 잔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누구는 공짜 밥을 먹고 누구는 돈을 내면서 먹는 불평등의 세상이 학교에도 전이되어 눈칫밥을 먹는 일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한 동심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급식비를 낼 여유가 있는 아이들에게 공짜점심을 주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있다"라고.

그러나 의무교육인 배움의 첫 시작과 함께 집단사회생활의 처음을 불평등으로 시작하는 일을 개선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게 무어란 말인가.

민주당에 이어 한나라당 후보까지 무상급식을 약속했으니 적어도 충북의 미래는 평등에서 시작할 수 있게 됐으니 말 그대로 '이대로만 실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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