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와 처벌, 그리고 여성
낙태와 처벌, 그리고 여성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0.04.1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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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연지민 교육문화부장

최근에 낙태에 대한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에서 낙태(불법 인공임신중절수술) 근절을 위한 종합 대책을 내놓으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정부는 낙태율을 줄이기 위해 피임교육을 강화하고 미혼모 지원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또 '불법 낙태 시술기관 신고센터'를 만들어 강력히 단속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여성계가 발끈하고 나섰다. 낙태를 범죄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자칫 여성의 문제로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여성들의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여성계 목소리는 여성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법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며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임신은 여성들에게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전문직 여성이 늘면서 출산을 꺼려하는 것도 낙태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개인적 욕구를 발목 잡는 것 중 하나가 임신이기 때문이다.

예전보다 결혼한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증가하긴 했지만, 여성이 느끼는 임신에 대한 하중은 남자들의 짐작, 그 이상이다. 가정적인 남편들이 늘고는 있으나 임신에 따른 육아는 아직도 여성의 몫이고, 자녀 교육도 여성의 몫으로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해 가정과 사회에서 시시때때로 들이대는 여성 책임론은 여성을 아내이자, 엄마의 자리로밖에 보지 않는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지난 주말 방송된 '인생은 즐거워'에서 낙태에 관한 다양한 시각을 표출해 보여줬다. 둘째를 원하지 않는 딸이 행복추구권과 맞벌이를 이유로 친정 식구들에게 낙태를 선언하자, 할머니를 위시해 어머니, 삼촌까지 낙태를 강력 반대하며 설전이 오갔다. 몸매도 망가지고, 일도 해야 된다며 낙태하겠다는 아내와 임신을 내심 기뻐하면서도 낙태반대 입장을 유보하는 남편, 남편이 원하는 것도 들어주지 못하는 게 사랑이냐며 구박하는 할머니, 낙태 허용선을 외국 사례로 들려주는 의사 오빠, 딸이 우선인 엄마의 입장까지 주변인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조명됐다. 비약적이고 함축적이지만 낙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가장 잘 보여준 대목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낙태를 불허하고 있다. 저출산이 문제가 되는 시점에서 낙태에 관한 일련의 논쟁은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단순히 낙태와 처벌이라는 근시안에서 벗어나 사회적 인식의 가치와 책임이란 테두리에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임신은 여성 혼자만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껏 임신과 관련된 낙태와 출산, 육아 등 대부분의 문제는 여성만의 책임으로,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 남성이 가정 경제를 책임진다는 명목하에 출산부터 양육에 이르는 긴 시간을 여성이 떠맡아 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낙태 논쟁에서 남성이 항상 빠져있던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여성들의 가치관도 변했다. 남성도 여성과 동등하게 생명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시기이다. 또한 사회는 좀 더 성숙한 자세로 낙태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낙태행위가 생명존중사상에 어긋난다는 식의 접근 방법이 아니라, 임신 당사자인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불편이나, 불이익도 고려해야 한다.

여성과 임신은 불가분의 관계다. 낙태를 예방하는 데 힘을 쏟을 게 아니라, 행복한 출산문화를 조성하고 이를 권장하는 사회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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