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드라이버
택시 드라이버
  • 한인섭 기자
  • 승인 2010.04.0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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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인섭 사회부장

택시라는 공간은 보편적인 경우라면 정감을 느낄 대상이지만, 때론 흉기로 돌변한다. 요즘 청주 업계처럼 말이다. 긍정적 요소를 들자면 택시는 '시민의 발'이자, 손색없는 대화 공간을 제공한다. 기사와 승객은 낯선 사이더라도 나란히 앉아 터놓고 대화를 나누곤 한다. 다양한 이들이 올라 타 좁은 공간에서 털어놓은 세상 소식은 기사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 '민심'이 된다.

일상에 묻혀 살던 이들은 기사들의 입을 통해 뉴스가 전하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얘기를 들을 수 있다. 요즘처럼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는 이들의 입을 통해 튀어나오는 후보 평가는 세상 인심의 잣대와 마찬가지로 여겨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거 때만 되면 택시기사들을 공략하려는 구전 홍보단이 꾸려져 '누가 유리하더라'는 식의 가공된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예 이들을 선거 운동원 삼아 활용할 정도였던 '풍향계'역할과 비중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1976년 미국에서 개봉된 '택시 드라이버'는 70년대 베트남전 이후 혼란스럽고 지칠대로 지쳐버린 미국의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였다. 로버트 드니로와 조디포스터가 주연한 이 영화는 택시기사의 일상을 통해 세상에 대한 불만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갈망을 다뤘다. 번쩍거리는 도심과 북적거리는 인파 사이에서 승객을 태워 살아가는 주인공 트래비스는 화려한 생활환경과 달리 우울함과 고독을 뼛속까지 느끼곤 한다. 그는 가출한 10대 소녀를 유혹해 매춘굴로 끌어들였던 악덕 포주를 부패한 사회의 상징으로 여겨 총격전까지 벌인 끝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준다. 총상으로 의식불명이 됐던 주인공 트래비스는 곡절 끝에 뉴욕 밤거리로 돌아와 다시 핸들을 잡는 얘기로 끝난다. 2004년 같은 제목의 영화가 국내에서도 개봉됐다. 스토리와 설정은 다르지만 두 영화는 '군중 속의 고독'과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는 인간의 단면을 그렸다. 영화 팬들이 두 가지 이야기에 낯설지 않은 것처럼 일반인들은 이웃집 아저씨 같아 한 발짝 더 다가선 느낌을 택시기사에게 받곤 한다. 이런 친근감과 스크린에서 풍기는 그들의 여운은 가끔 벌어지는 일탈행위 때문에 홀랑 깨진곤 한다.

요즘 청주 택시업계 같은 경우다. 무심천 40대 여자 살인사건을 비롯한 연쇄살인 범인이 택시기사로 밝혀지면서 여간 곤혹을 치르는 게 아니다. 법인택시, 개인택시 할 것 없이 놀란 시민들이 승차를 꺼리기 때문이다. 승객 카드와 현금을 빼앗고, 성폭행에 살인, 사체유기까지 범행을 몇 차례나 했으니 시민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몇개월 동안 범행이 이뤄졌는데 경찰은 용의자 파악도 못했었고, 택시 트렁크에 사체를 둔 채 영업을 한 사실도 있었다는 사실에 시민들은 더 놀랐을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판에 수입이 줄어 한숨 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개인택시는 그나마 덜한 모양인데 법인택시는 승객들이 차를 기다리다가도 등을 돌린다는 얘기이다. 운행시간과 운전자 등 이용정보가 일일이 기록되는 콜택시로 몰리는 일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직원 관리에 큰 허점을 드러낸 택시업계가 7일 자정 결의대회를 연다고 한다. 업계 얘길 들어보니 인력난에 기사들에게 이래라 저래라는 식의 통제가 어렵다보니 범죄자가 숨어 활동할 수 있는 공간까지 됐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자정결대회라는 행사도 계기가 되겠지만, 업계의 내실있는 후속조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기사채용에서 인성교육, 이미지 쇄신 방안까지,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업계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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