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태, 軍·공직사회 기강확립 계기
천안함 사태, 軍·공직사회 기강확립 계기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0.03.30 2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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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 <천안>
지난 주말, 천안 상록 골프장이 난데없이 된서리를 맞았다.
공무원 연금 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이 골프장은 공무원들에게 특별우대를 해주는 곳이다. 비교적 이용료가 저렴해 공무원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인기가 높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사전 예약-부킹이 무더기로 취소됐다. 주말 골프를 즐기려던 공무원들이 해군 초계함 천안함의 사고로 갑자기 예약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당일 부킹된 백 몇십 건 중 30~40%가 취소됐다고 한다.
인터넷 뉴스에 '잔인한 3월'이란 제목이 눈에 띈다. 해군 초계함으로 꽃다운 청춘들이 무더기로 생명을 잃고, 우리의 영원한 스타 최진실 남매의 자살 비보가 전해진다.

막을 수 없었을까. 자살이야 본인의 의지 문제라고 치면 할 말은 없지만, 그의 주위에서 보듬어 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덤덤하게 넘어갈 일도 아니다.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사회가 부른 참변이 아닐까.

또 다른 참사, 천안함 사태로 해군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 사고 발생후 지금까지 해군의 대처를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구조는 해경이 하고, 함미는 민간 어선이 발견했다. 해경에 따르면 사고 직후 생존자 58명 중 해경이 56명, 어선이 2명을 구조했다. 구조에 투입된 해경 소속 함정은 대청도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해군의 신고를 받고 5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현장 주변에는 해군 고속정 4척이 있었지만 가라앉는 천안함에 접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해군은 구조 목적이 아닌 일반 작전 함정이어서 구명용 고무보트를 탑재하지 않고 있었다고 변명했다. 아니, 자체 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구명용 보트를 단 하나도 싣고 다니지 않았다니 누가 이해하겠는가. 고무보트가 몇백, 몇천 kg이나 되는가.

침몰 전 배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부표를 달지 못한 점도 의문이다. 해군이 "배에 탔던 승조원이 부표를 달았지만 거센 조류에 줄이 끊겼다"고 해명했지만, 이게 실수로 넘어갈 일인가.

부표만 제대로 달아놨더라도 선체 함미를 수십 시간이 지난 뒤 발견해 늑장 구조를 해야 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사고 접수 후 11분간의 공백도 도마에 올랐다. 해군은 9시30분에 폭발사고가 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출동 명령을 내린 시간은 11분이 지난 9시 41분이었다. 인근에 있는 고속정에 출동 명령을 하면서도 구조가 필요한 위급상황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최소한 자체 구조 장비를 확보하라는 지시는 해야 했었다. 해군 고속정이 4척이나 현장에서 속수무책으로 해경의 구조작업을 지켜봐야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해경이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면 58명의 구조된 장병 중 더 많은 인명 손실이 발생할 뻔했다.

이런 지경이니 당연히 기강이 해이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군(軍)만 문제가 아니다. 총체적으로 공직사회의 기강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주말 상록 골프장은 물론, 전국 골프장에서 천안함 사고와 아랑곳없이 골프를 친 고위 공무원들도 부지기수다. 충남 태안에선 농림수산식품부 직원 등 8명의 공무원이 음주 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천안함 사고 다음날인 27일엔 주호영 특임장관이 대구에서 구청 개청 30주년 기념식에서 노래를 불렀다가 망신을 사고 있다.

사회자가 갑자기 불러 마지못해 나섰다고 하지만 무대에서 '천안함의 참사'를 함께 애도하는 말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잔인하고 씁쓸한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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