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봉은사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0.03.22 21: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 <천안>
어허, 이 중들 하는 꼴 보소. 땡추 하나가 한 말로 왜 이리 세상이 시끄러워졌는가.

돌아가신 법정스님이 봤으면 이 정도 말로 혀를 차지 않았을까. 요즘 시끄러운 봉은사 얘기다.

이 절 주지 명진스님(속명 한기준)이 지난 일요일 법회에서 한 말로 갑자기 온 나라가 시끄러워졌다. 처음엔 무덤덤하게 넘어갈 듯하던 보수 언론들도 예상외로 반응이 크자 슬슬 '입질'을 시작했다. 하긴, 어제 MBC에서 손석희가 인터뷰를 땄으니. 진실게임이란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대세는 명진스님 쪽으로 기울 것 같다.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을 정리하면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11일 조계종 총무원은 강남 부자촌에 자리한 '알짜배기' 절 봉은사를 직영 사찰로 전환했다. 이게 도화선이 됐다. 한마디로 해당 절로서는 직영 전환의 의미가 재정권, 즉 사실상의 자립권을 빼앗는 것이니 당연히 반발이 있을 터.

심기가 불편했던 주지 명진스님이 지난 21일 법회에서 신도들을 모아놓고 '봉은사의 직영 전환에 현 정권의 외압이 작용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외압 행사의 당사자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목했다.

스님은 "안 대표가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자승 총무원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총무원장에게 '강남 부자 절에 좌파스님을 그대로 놔둬서야 되겠느냐. 용산참사 현장에 1억 갖다준 것을, 돈 함부로 운동권에 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 말이 그대로 보도되면서 진실게임이 시작됐다. 안 대표는 명진스님의 말을 전면 반박하고 있고 스님도 자신의 말에 승적을 걸겠다며 날을 세웠다. 스님이 승적부에서 이름을 뺀다니. 이거 정치인 대 종교인의 진실공방이라면 스님 말을 많이 믿지 않을까.

스님 쪽 손을 들어주고 싶은 이유도 꽤 있다.

안 대표는 최근 김길태 사건을 놓고 '좌파 성향의 교육이 성범죄를 양산했다'고 말해 물의를 빚은 전력이 있다. 명진스님이 자신의 1000일 정진 수행기간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했고 지난해 용산참사 유족들에게 1억원을 전달했으니 안 대표의 입장에서 스님이 좌파임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당사자끼리의 진실공방을 떠나 영 꼴불견인 것이 있다. 수행의 도량이자,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을 모신 사찰이 마치 상가 점포처럼 이권을 놓고 뺏고 빼앗기는 듯 보이는 모습이 영 불쾌하다.

직영 사찰과 일반 사찰의 차이가 뭔가. 총무원이 직접 관리하는 것과 절의 주지가 관리하면서 총무원에 분담금(이 말도 불쾌하다)을 내는 것과 뭐가 다른가.

보도에 따르면 봉은사는 명진스님이 오기 전에 시주가 연간 80억원에 불과했으나 이후에 사찰 운영을 신도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120억원으로 늘었다.

등록된 신도들도 20만명으로 늘어났고 재정 운영에 신도들이 참여, 투명하게 집행되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총무원이 이를 직영으로 전환해 봉은사 신도들마저 불만이 크다고 한다.

봉은사가 직영 사찰로 전환된 것도 그 이유가 석연치 않다. 총무원이 서울 도심포교의 거점으로 삼으려 한다고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속내는 '돈줄'을 잡으려 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든다. 그래서 국내 최대 규모의 시주가 들어오는 강남 부자 절을 직영화환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착찹하다.

문득 우리 뒤통수에 돌아가신 법정스님이 나타나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너희 아직도 무소유 안 읽어봤느냐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