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의 사회학
'찌라시'의 사회학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3.0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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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문화평론가. 전 언론인>
일간지에 끼워져 배달되는 '찌라시'에서도 사회적 변화의 조짐을 예측할 수 있다.

'찌라시'는 서민의 경제사정과도 긴밀한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번화가를 중심으로 마구 살포되고 있는 '찌라시'의 변화에 대해 적어도 사회부 기자들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유흥가에 뿌려지는 명함모양의 '찌라시'는 요즘엔 급전과 일수, 달돈 등 사채와 관련된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만큼 서민들의 호주머니가 비어있을 뿐만 아니라 돈 쓸 일은 늘어나는데도 제대로 돈을 빌릴 곳이 마땅치 않음을 반증하는 것일 게다.

반면에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돈이 많이 풀리면 늘어나는 '찌라시'는 대개 전화방이나 도우미 등 성적 자극을 노리는 말초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처럼 '찌라시' 하나에도 사회·경제적인 연관성이 뚜렷하게 나뉘어 지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정작 나는 아직 사채와 관련된 '찌라시'의 폐해와 서민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고민하는 기사를 본 일이 없다.

그저 눈에 보이는 선정적 여인네의 사진이 청소년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친다거나, 지나친 성적 호기심을 자극해 성범죄가 우려된다는 정도에 대한 경고성 기사 정도가 시도되고 있을 뿐이다.

각설하고, 신문에 거의 매주 목요일 혹은 금요일쯤이면 끼워져 있던 거대 자본 대형할인매장의 '찌라시'가 최근 들어 갑자기 사라졌다.

혹시 재래시장 및 지방의 작은 구멍가게에서 격하게 저항하고 있는 소위 SSM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대형할인매장이 광고를 포기한 것인가 생각할 수도 있으나, 결론은 '아니올시다'이다. 이들 거대자본의 대형 할인매장의 광고는 친절하게 주요 일간지의 지면에 커다랗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신문마다 제각기 크기를 달리한 채 말이다.

그게 어쨌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건 고스란히 지역의 피해로 작용한다. 대형 할인매장의 광고는 지방신문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즉 지방 신문 산업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중앙지가 됐든 지방지가 됐든 배달되는 신문에 끼워진 '찌라시'광고는 지방의 신문 지사나 지국, 보급소 등의 살림살이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게다가 그 '찌라시'가 지방에서 인쇄된다면 지역의 영세 인쇄업체나 광고 중간상 입장에선 꽤나 짭짤한 수입원이 된다는 것은 신문종사자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랬던 '찌라시'가 어찌된 일인지 대형할인매장의 가격경쟁 심화와 그에 따른 중앙지의 지면광고가 본격화되면서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그나마 열악했던 지방의 시장마저 중앙으로 소리 소문 없이 편입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중앙집권적인 대자본에 철저하게 종속되는 지방의 '찌라시' 사회학이 아닐까.

미국의 사회학자 C.라이트 밀즈는 그의 저서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권위는 종종 명백히 드러나지 않으며,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을 명백히 드러내거나 정당화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때문에 일반인들은 개인적인 문제가 있거나 공적인 문제에 직면했다고 느낄 때 사고와 행동의 목표를 정하지 못하며, 그래서 막연하나마 자신의 것으로 여겨지는 가치를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바야흐로 '찌라시'가 넘쳐날 선거판이 다가오고 있다. 과연 (우리)지방에 도움이 되는 '찌라시'를 즐거운 마음으로 살펴볼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찌라시'를 통해 미래와 희망이 보장되는 선택을 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온전하게 유권자인 지방주민들의 몫이 될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지방의) '찌라시'가 중앙지의 지면광고로 대체되는 현실에 대한 경계는 지방의 소비자가 맡아야 하며, 그야말로 선량을 선택하는 일 또한 지방의 유권자의 몫으로, 그 기준은 앞서 인용한 C. 라이트 밀즈의 말에 다 담겨 있다.

참고로 '찌라시'는 일본에서 온 말로 우리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적으면 '지라시'가 되나, 국어사전은 '선전지', '광고지' 혹은 '낱장광고'로 순화해 쓸 것을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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