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결단이라는 말의 의미
중대결단이라는 말의 의미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3.0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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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그동안에도 간헐적으로 출몰했지만 별다른 파괴력을 갖지 못했던 '중대결단'이라는 말이 갑자기 힘을 싣는 분위기다. 이를 아예 공론화하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문제의 중대결단이 바로 국민투표라는 전망마저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

물론 세종시 문제가 벌써 반년이 가깝도록 국정의 눈엣가시가 돼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형국이라면 당연히 대통령으로선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임에 틀림없다. 다만 그것이 소문대로 국민투표라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해법을 찾기 위한 방책이 되레 더 혼란만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렇다. 지금까지의 세종시 공방이 국지전이었다면 앞으로 국민투표를 놓고 벌어질 이해당사자간 다툼과 갈등은 전면전으로 확산된다. 그리고 국민투표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전면전의 후유증은 패자는 물론 승자에게도 심각한 상처를 남긴다는 게 역사의 가르침이다. 이유는 또 있다. MB가 정운찬을 내세워 세종시의 수정방침을 공표하는 순간 정작 우리가 걱정한 것은 같은 충청인들끼리 갈갈이 찢기는 목불인견의 상황이었다, 이를 최악의 시나리오로 규정하며 많은 사람들이 경계를 늦추지 않았음에도 현실은 이미 그렇게 됐다,

원안과 수정안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오는 6월 지방선거가 분명하게 길을 깨우쳐 주겠지만 그래도 상처받은 지역의 자존심은 결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세종시 해법이 국민투표로 결정되는 순간, 바로 이러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다시 각색된다는 점이다. 전국은 전국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갈라지고 헐뜯게 되는 세종시판 사육제가 반드시 벌어진다.

이는 선거 때마다 영호남이 달라지는 지역감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역감정은 그 자체로도 정치력을 만들어 가지만 세종시의 국민투표는 치고 받으며 상처만을 주고 받게 될 국민들을 서로 혐오스럽게 만들 뿐이다.

국민투표 발상은 위헌여부를 따지기 전에 원초적으로 논리의 모순을 안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통치자들은 늘 백성과 국민을 위하고 또 두려워 한다고 한다. 하지만 통치자가 가장 의식하고 무서워 하는 것은 무지렁이 백성과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류를 형성하는 경제적 지배층이다. 비록 모택동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설파했어도 그 총구 역시 경제 즉 돈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조선왕조 27명의 임금중에서 종묘로 신위가 모셔지지 않아 죽어서도 조(祖)나 종(宗)을 얻지 못한 연산군이나 광해군이 폐주로서 비참하게 삶을 마감한 것은 결국 당시 사회를 쥐락펴락하던 경제적 지배층을 손보려다 되레 되치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연산군은 왕권을 폄훼하던 양반이라는 기득권을 척결하려다 좌절한 후 지금까지도 폭군으로만 각인돼 있고, 광해군 역시 당시로선 파천황의 대동법(大同法)을 도입하며 공평의 경제 패러다임을 곧추세우려 발버둥쳤지만 바로 그 경제 지배세력의 반발에 부딪쳐 개혁의 완성은커녕 자리에서조차 쫓겨나게 됐다.

세종시의 당초 구상은 다름아닌 수도권 과밀화라는 경제적 집중, 다시 말해 연산군과 광해군이 칼을 대려던 경제지배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경제대통령'을 내세워 경제적 소외층 들의 전폭적 지지로 당선된 MB는 역으로 그에게 환호한 이들에겐 반서민의 이미지로 부각되더니 끝내 세종시 수정안까지 밀어붙여 수도권의 경제 집중화를 용인하는 꼴이 됐다.

아닌 게 아니라 이명박 정권이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시켜 확실하게 얻을 것이 있다면 수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경제 지배세력으로부터 절대적 지지와 이에 다른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 일지도 모른다.

이런 마당에 지방과 서민들에게 상실감만을 한껏 안긴 세종시 수정안의 관철을 위해 다시 국민 내지 서민들에게 읍소하겠다고 하니... 글쎄다.

성공한 지도자는 통치의 편의를 위해 경제적 지배세력을 의식하는 것 못지않게 백성 및 민중과의 괴리를 더 두려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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