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2.1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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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전 언론인>

조선 선조 때 시인 백호 임제(林悌)는 평양기생 한우(寒雨)를 보고,
북천이 맑다기에 우장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 온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라며 읊조립니다.


이에 맞서 기생 한우(寒雨)는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라고 화답합니다.

설을 앞두고 내리는 찬비가 마음을 스산하게 합니다.
설날과 일요일이 겹치는 짤막한 연휴에 눈비마저 겹칠 것이라는 기상예보는 걱정에 걱정을 더하게 합니다.

아무래도 풍족할 수 없는 우리네 살림살이에 설날과 같은 명절은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눈길을 뚫고서라도 장엄한 귀성길을 택할 것이며 그 속에서 살아 있음과 함께, 나의 원형질에 대한 가치를 새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청주·청원 통합이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찬반 논란이 치열하게 진행되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통합의 당위성에 대한 원론적인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예상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청주와 청원의 통합에 중앙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마뜩지 않습니다. 아니 보다 솔직히 말하면 청주와 청원지역 주민들이 부끄러워해야 마땅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을 하나로 하는 일, 그리고 서로간의 반목과 질시를 떨쳐버리고 진정한 믿음으로 소통하면서 자치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일은 본래부터 우리 지역 주민 스스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때마침 청원군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통합 찬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니,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권한을 가진 이들은 대의정치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깊이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남이 강제로 하는 일에 억지로 따라가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치가 아니며, 청주와 청원의 전통과 긍지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다시 설날 얘기를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명절마다 되풀이되는 민족의 대이동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도시로 집중되면서 농촌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그나마 부모님 세대마저 돌아가시게 되면 더 이상 찾아갈 고향도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찬비가 주척주척 내리는 길을 불원천리 달려가야 하는 것은 설날이기 때문이고요, 또 고향과 부모형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나이게 하는 원형인 까닭입니다.

고향은 어머니의 또 다른 이름이고, 어머니는 그 어떤 은유도 필요 없는 포근함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제발 이번 설에는 포근한 어머니의 사랑을 닮아 모진 마음 고쳐먹고 원리와 원칙,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찬비 맞았다고 가지 못하는 고향은 없고, 또 그런 찬비를 맞았다고 그냥 얼어 자게 할 부모형제는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찬비 맞았어도 녹아 잘 수 있는 넉넉함으로 짧은 설 잘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 그대로 청주와 청원 역시 둥그렇게 하나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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