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산 스케치
우암산 스케치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0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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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강태재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신년연휴가 끝나고 새해 첫 출근하는 날, 세상은 온통 눈세계로 변했습니다.

어느 방송은 103년만의 폭설이라며 수도서울이 마비되고 지하철은 지옥철이 됐다며 요란을 떨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서울의 거리는 바로 아수라(阿修羅)의 장(場)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내일은 더 기온이 내려가 온통 빙판길이 될 것이라며 아비규환(阿鼻叫喚)을 예고했습니다. 듣다보니 설상가상(雪上加霜)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같은 양의 눈이 내린 지방도시는 그토록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데, 왜 서울만 그럴까요. 다 아시지요. 공룡이 멸망한 까닭 아니겠습니까.

엎친 데 덮친다더니 "여기저기로 무질서하게 뻗은 도로들, 소비에트 스타일의 콘크리트 아파트 건물들, 심각한 오염, 영혼도 (뜨거운) 마음도 없다. 숨막히는 단조로움이 사람들을 알코올 의존증으로 몰고 있다" 해외언론이 보도한 '세계 최악의 도시' 3위를 차지한 서울에 대한 강평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일관되게 수도권과밀 억제정책을 추진해왔음에도 서울공화국, 공룡서울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역대정부는 수도이전을 계획하였고, 부분적으로나마 분산배치를 해왔던 것입니다. 지난 참여정부는 그간의 역대정부가 추진해 온 것을 감안하여 마지막 카드로서 '신행정수도' 이전을 실행하려 했던 것인데, 헌법재판소에 발목을 잡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낙착이 됐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까 수십번 확약도 헛되이 행정부 이전은 못하겠다는 것이고, 그 대신 뭐든 다 들어 주겠다는데, 그 대신은 뭣을 해주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니, 이런 사람 환장할 노릇이 어디 있습니까.

헛헛한 마음에 쌓인 눈을 대충 치우고 우암산을 향합니다. 조금씩 휘날리던 싸락눈이 함박눈으로 바뀌더니 어느새 맹렬한 눈보라로 변합니다. 거의 시계제로, 아무리 주례사 버전으로 생각을 바꿔도 서설(瑞雪)이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웬만하면 '연초 서설 장식'이란 말을 하고 싶지만 생지옥을 견디는 서울시민들에게 너무 민망한 말입니다.

뺨을 때리는 눈보라가 상쾌함을 더해주는데 갑자기 확성기 음성이 들립니다. "고용을 보장하라!" 서문대교 조형물 위에서 절규하던 하이닉스·매그나칩반도체 해고노동자 박순호의 목소리가 이 눈보라 속에서 귓전을 때리다니 벌써 4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청와대 오찬에서 하이닉스 하청노동자 해고문제 해결 건의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그래도 이제는 불법탄압은 하지 않잖느냐"는 말이 무척이나 고깝게 들렸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조차도 오감한 세상이 됐으니 아마도 이런 환청이 들리지 싶습니다.

어느덧 산마루에 다달았습니다. 커다란 훌라후프를 힘차게 돌리고 있는 아줌마를 보면서 엊그제 1월1일 새벽 우암산 새해맞이 행사에서 만난 노신사의 말씀을 다시 듣습니다. "시집간 딸이 수년간 태기가 없어 무척이나 고심했었는데, 지난해 우암산 새해맞이에서 소원을 빌고 나서 외손주를 얻었다. 우연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믿는다."

여러분의 새해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암산에서 올린 소지에는, 광목천에 적은 소망은 건강, 합격, 취직, 결혼, 화목, 대박과 함께 4대강 삽질 반대, 행정중심 세종시 원안사수, 서민경제회생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이 모든 소망이 이뤄지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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