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일 서울로 간다
나는 내일 서울로 간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2.2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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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6·25의 폐허 속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기적'은 분명 서울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의 기운을 가장 구체적으로 촉발시킨 계기는 가히 기습적이라 할 수 있는 1970년 새마을운동의 출범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박정희에 의한 근대화 운동은 다각도로 추진됐다. 대표적인 것이 재건국민운동이다. 당시의 분위기가 어느정도였는지는 지금의 초등학교인 국민학교에서조차 거수경례시 외치는 소리가 '재건!'이었음을 기억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새마을운동이 나라 전체로 휘몰아치면서 특히 농어촌은 격랑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고 이때 사람들의 입에서 가장 비장하게 나오는 말 중에 하나가 '서울로 간다'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시절의 서울은 그야말로 '꿈'의 상징이었다. 서울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곧 성공과 출세로 연상됐고 '서울로 간다'는 것 자체가 한 개인에 있어선 말 그대로 지상최대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여유가 있고 배운 사람이라면 자녀들을 서울로 전학시키기에 혈안이 됐고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선 중고등학교를 바듯 마친 어린 자녀들을 구로공단과 청계천 피복공장으로 보내면서도 내일의 희망을 가슴에 품었던 것이다.

요즘도 곧잘 문제가 되는 위장전입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자녀들을 서울로 전학시키기 위해 서류상으로만 거주지를 옮기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행위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제 새끼를 잘 가르치겠다는데 뭘...'식으로 동정론마저 샀다.

이에 힘입어 1970년만 해도 500여만명에 불과했던 서울 인구가 이제 1000만을 넘어서는 공룡도시가 된 것이다.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이런 과정을 거쳐 서울이 성공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이러한 서울을 중심으로 경쟁력 있는 인프라를 갖춘 수도권이 존재하기에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비대해지는 바람에 되레 나라 전체를 옥죄고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닌가.

논리의 비약같지만 세종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계획한 당초의 정부방침은 다름아닌, 좁게는 70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40년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넓게는 과거 한양에서의 장원급제로 상징되는 왕조시대 유물인 '서울로 간다'를 단절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단순히 정부부처 몇 개를 옮기는 차원이 아니라 수십, 수백년 동안 무조건 서울로 향하던 '국가적 문화'를 바로 잡겠다는 게 궁극적 취지였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세종시가 기업체 몇 개를 끌어오느냐 마느냐의 대상으로 변질돼 단순히 충청의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네 안 되네를 놓고 한번 판단해 보라는 주문을 받기에 정신이 없다.

버젓한 기업체가 아니라 손바닥만한 제조공장 하나만 들어와도 당연히 지역으로선 도움이 된다. 우리가 분개하는 것은 왜 본질을 숨기고 충청인들에게 막무가내식으로 선택만을 강요하느냐는 것이다.

어느덧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예정대로 내년 1월 11일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되면 우리로선 또 한 차례 지난하고도 버거운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이 같은 충청인들끼리 서로 갈라지고 등을 지며 반목하게 되는 현실이 하루 하루 다가오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수정안을 놓고 충남은 충남대로, 충북은 충북대로 찬반으로 엇갈려 서로 피튀기는 공방을 벌이는 장면도 두렵거니와 이미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충남과 충북이 엇박자를 낼 것같은 안 좋은 생각도 퍼뜩 퍼뜩 머리를 스쳐간다. 이렇게 될 경우 결국 남는 것은 서로 갈기갈기 찢고 찢는 충청인들의 가슴뿐이 아니겠는가.

또 한 가지, 사람들이 '서울로 갔다'고 해서 무조건 다 성공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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