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시루
콩나물시루
  • 문종극 기자
  • 승인 2009.12.2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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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유년시절 방안 한켠에 놓여진 콩나물시루에 엄마를 흉내내며 수시로 물을 줬던 기억이 난다. 물을 주다보면 어느날 싹이 트고 그 후부터는 하루가 다르게 콩나물이 쑥쑥 자란다.

물만 먹고도 쑥쑥 자라는 콩나물이 시루 위 밖으로 차고나올때쯤 보면 빈틈이 없다. 그야말로 미어터진다. 지금의 기억으로도 그 자체가 참 정겹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런 콩나물시루가 부정적으로 비유될 때는 답답함이 느껴진다.

콩나물교실, 콩나물버스 등은 '미어터질것'처럼 꽉 차서 터지거나 터질 듯한 상태를 빗댄 말이다.

충북을 방문한 정운찬 총리를 생각하다 문득 콩나물시루가 떠올랐다.

동시에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것이 찬성하는 사람들에게는 '충청인의 지역이기주의'로 비쳐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자 뜬금없이 콩나물시루가 떠오른 것이다.

요즘들어 특히 그렇다.

충청인만 받아들이면 된다며 뻔질나게 충청지역을 오가는 정부와 여당 인사들을 보면 그렇고 남의 일처럼 강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충청권외의 다른 지방을 봐도 그런 생각이 든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미어터지는 콩나물시루를 숨 쉴 수 있도록 해주고 다른 곳에 골고루 나눠줘 균형을 맞추자는 고육지책이었다.

즉 수도권 과밀을 해소해 지방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국가균형발전을 꾀하자는 것이었는데 이 취지는 아예 사라진 것 같다.

오로지 서운하지 않게 해줄 테니 수정안을 받아들이라는 것 뿐이다. 달랑 도시하나 만드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도 말이다. 정부가 기존 도시도 통합해야 한다며 강공책을 구사하면서도 뻔뻔하게 또 하나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당초 취지인 수도권 과밀해소와 국가균형발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안이 먼저 나오고 그 안을 국민들이 받아들이면 그 후에 세종시 원안을 백지화하든 수정하든 해야함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본말이 전도됐다.

국민들이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정치권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늘 그런 식이니까) 수도권 과밀해소책이 추진되면 당연한 이치로 지방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데도, 그것이 행정중심복합도시인데도 충청권을 벗어난 다른 지방에서조차 강건너 불구경이다.

따져보자.

행정도시는 자족·녹색·명품 도시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국가균형발전을 꾀하자는 것이었다. 1966년부터 지난 40여년 동안 수도권 억제와 지방 발전을 이끌기 위한 수많은 정책이 펼쳐졌다.

그럼에도 서울로, 서울로 향하는 수도권 집중을 당해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나온 것이 행정도시다. 극약처방인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중앙집권·행정중심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여전히 수도권은 과밀상태다. 행정이 가야 다른 것도 따라간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세종시 원안으로도 자족기능이 가능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행정도시로는 도저히 자족도시가 될 수 없다며 수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자족도시 하나 가지고 수도권 과밀을 해결하기에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안다.

그렇다면 행정도시 건설의 당초 취지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세종시 건설여부를 차치하고라도 국가균형발전을 포기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정부와 여당이 주장하는 행정부처가 이전함으로써 발생하는 행정의 비효율 또는 불편은 어느정도는 예상된다. 그러나 그보다도 수도권 과밀과 지방쇠퇴라는 비효율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덮으려 하는지도 묻고 싶다.

콩나물시루는 미어터지기 전에 콩나물을 뽑아냄으로써 지킬 수 있다. 수도권이 미어터지면 어떻게 할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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