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들의 굴욕
선출직들의 굴욕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2.10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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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김재욱 청원군수와 이종건 홍성군수가 어제 각각 직위를 잃었다. 두 명의 선출직이 임기를 못 채우고 하루아침에 낙마한 것은 본인은 물론 그를 뽑아 준 유권자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졸지에 수장을 잃게 된 두 기관의 구성원들이 겪게 될 상실감과 이로 인한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각각의 자치행정이 그동안 이들 선출직들에 의해 절대적으로 좌우됐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 관선시대와 비교해 민선 자치 이후 가장 두드러지게 달라진 것은 적어도 조직내에서만큼은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치단체장의 막강한 '힘'이다. 지방자치의 근본 취지와는 다르게 선출직 광역. 기초단체장들의 입김이 워낙 세다 보니 전국의 자치단체마다 일종의 소공화국을 이룬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선출직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일탈은 당장 뉴스거리가 된다. 말 그대로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1년 내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사건의 단골이 바로 이들 선출직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런데 선출직들의 모든 불행은 자신이 누리는 권한의 본질을 착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들이 갖게 되는 권한은 그를 뽑아준 유권자들로부터 잠시 위탁받은 것에 불과한 데도 이를 쉽게 잊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권력으로 변질시키고 어느덧 이에 도취해 조직을 관리한다. 우리나라 정치문화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선출직, 혹은 지도자들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상실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 되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세종시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역시 국가 지도자의 신뢰, 진정성의 부재가 부른 일종의 예고된 재난()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금 수정안에 목을 매고 있지만 막상 충청인들은 세종시의 성격보다는 그 절차적 하자에 더 서운함을 가지고 있다. 자기들 멋대로 지지고 볶고 하다가 안 되니까 이제 와서 다시 충청인에게 손을 내밀겠다는 심산이 아닌가. 우리의 시각에선 '가지고 논다'고 해도 그들로선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 촛불시위에 사과하며 밝힌 내용은 여전히 국민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며 아무리 시급한 국가적 현안이라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먼저 생각했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했다'고 한 고해성사를 그대로 믿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충청인 모두가 반대하는 수정방침을 발표하면서 과연 국민의 뜻을 먼저 헤아렸는지 묻고 싶다. 그러기는커녕 무조건 밀어붙이고 나서야 그때 그때 상황논리에만 매몰되는 바람에 이곳의 민심만 흉흉하게 했다.

매사가 늘 이런 식이다. 그러니 사과의 진정성은 물론이고 근본적으로 지도자의 신뢰자체에 의문부호를 다는 것이다. 광우병 파동 때도 정작 뜻있는 사람들은 광우병이라는 위험성보다는 역시 그 절차와 과정상의 무모함에 더 분개했다.

국민건강이 볼모가 돼 이미 수년동안 논란을 빚어 온 사안임에도 대통령의 의지 하나만으로 그렇듯 쉽게 합의해 준 것에 열받았던 것이다. 이때도 결단에 앞서 국민의 뜻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굳이 야심한 밤에 청와대 뒷산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었다.

선출직들의 최고 자산은 두말 할 것 없이 본인을 뽑아준 유권자의 믿음과 신뢰다. 이를 외면하고 '임기동안만 임대받은 권한'을 마치 천부(天賦)의 권력으로 착각하는 순간, 선출직들의 비극은 잉태되고 이를 확인시키는 일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족, 만약 청주 청원통합이 무산되면 그동안 이를 주창해 왔던 청주의 선출직 지도자들은 다름아닌 바로 진정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이 정도 현안의 성사를 원했다면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직(職)부터 걸거나 내놨어야 정상이다. 결국 입만 가지고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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