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에 대한 단상
몽유도원도에 대한 단상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0.08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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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면서도 결국 '몽유도원도'를 직접 보지 못하고 말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리며 기획한 특별전시회에 모습을 드러낸 '몽유도원도'는 우리 그림이 분명하나 우리 그림이 아니다.

여민해락(與民偕樂),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김을 표방하는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 딱 9일간(9월29일~10월7일)만 선보인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의 화가 안견(安堅)이 그린 산수화이다. 여기까지는 우리 그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몽유도원도'는 우리가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엄연히 우리 그림이 아니다.

대한민국 대표 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개최하면서도 겨우 9일간만 임대형식으로 전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 '몽유도원도'의 현실이다.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그림이 어느 시기에 어떤 경로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는지는 확실한 고증이 없다.

다만 일본 식민지 시절 조선총독부가 수차례에 걸쳐 '몽유도원도'를 돌려 달라는 요구를 했으나 번번히 거절당했으며, 갖은 우여곡절 끝에 1950년대 한 골동품 수집상에 의해 한국에 들어와 판로를 찾고자 했다는 비화도 전해지고 있어 안타까움은 더해진다.

우리가 그림을 비롯한 미술품을 감상하면서 원본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은 그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아우라(Aura)'에서 비롯된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예술이론에서 나온 아우라는 예술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말한다.

일본의 국보로 지정돼 있는 '몽유도원도'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무릉도원을 거닐고 있는 꿈을 소재로 안견(安堅)이 1447년 그린 그림이다.

현실세상과 꿈속세계의 대조적인 분위기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몽유도원도'는 당시의 일반적인 회화의 전개와는 정반대인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의 흐름이 특징이다.(그러나 이 같은 그림의 전개는 일본에서 제멋대로 행해진 표구의 잘못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편집자 註)

'몽유도원도'는 7일까지의 아쉬운 전시를 끝내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일본 덴리대학은 앞으로 다시는 이 그림을 반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는 소문도 있어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더욱 가슴 저리다.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가 지난 9월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 참석을 위해 청주에 온 이후 위중의 병환을 앓고 있다.

세계기록 유산 직지의 오늘을 있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엄청난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해준 주인공이 바로 박병선 박사가 아닌가.

하여 그분의 병환 자체가 꿈속의 일이라면 하는 생각이 '몽유도원도'를 보지 못한 안타까움과 겹쳐지면서 상심이 더욱 크다.

프랑스에서 아직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한 직지원본의 서글픔과 속절없이 일본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몽유도원도'의 처지에서 다시 문화를 생각한다.

우리 것일 수도 있고, 또 우리 것이 아닐 수도 있는 작품의 위치에서 본질적 요소와 정신적인 가치 사이의 고민은 부담스럽다.

다만 이 풍성한 결실의 계절에 세상의 모든 원형질이 왕성한 생명력으로 꿈틀대는 역동성으로 세상의 본질적 가치를 일깨우는 힘이 되기를.

사족 하나. 8살 여아에 대한 극악함이 벌어진 지난해 12월, 기자들은 뭘 했나. 그 역시 본질에 대한 인간적 고뇌를 못한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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