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바로 보기
김대중 바로 보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20 21: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그를 내란음모의 수괴로 몰아 죽이려 했던 사람도, 저승사자와 다름없던 감옥의 간수도, 며칠 전만 해도 무려 10년을 갉아 먹었다고 독기를 품던 정적들까지, 모두가 영정 앞에 국화꽃을 바치며 머리를 조아렸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이 집단의 삶을 영위하는 본능을 가졌으면서도 역시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이처럼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화해와 화합의 능력이다. 이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사회에서 유독 인간한테만 휴머니즘을 안기게 한 이성이기도 하다. 지금 각계, 각인들이 만들어내는 훈훈한 화해의 제스처는 바라만 보기에도 전율로 다가 온다. 사실 우리들에겐 이러한 모습들이 너무나 간절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 김대중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의 쓰나미같은 추모열기를 한발짝만 옆으로 비켜서 조망한다면 느닷없이 김대중의 평생을 괴롭힌 '광란'이 오버랩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끊임없이 그의 얼굴을 빨간 색으로 분칠한 광기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추모 열기는, 또 언젠간 '인간 타작'으로 표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엄습한다.

우리에게 김대중은 변치 않는 '빨갱이'였다. 북한을 추종하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천하의 못된 마키아벨리스트, 여기에다 거짓말의 화신으로 각인된 것이다. 무려 30여년이나 지속된 학습효과의 결과는 바로 이것이다.

때문에 지금 4, 50대 세대들만 해도 김대중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다. 그것도 극히 일부만이 말이다. 그래서 그가 대한민국 민주화를 이끌고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위인임을 드러내려면 그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 과정의 실제부터 똑바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추모 열기 또한 그렇다. 머리에서 발 끝까지 그의 모든 것을 기리고 추앙하려는 뜻도 좋지만 정작 우리는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 바로 한 사람을 평생동안 그렇게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은 인간들의 추악한 과오를 묻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을 바로 보려면 이데올로기의 착종 현상, 아니 변질과 변태적인 가학성부터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이념의 자의적인 적용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을 반세기가 가깝도록 빨갱이로 몰아 가며 투옥하고 가두고 죽이려고까지 했던 야만성은 과연 어디로부터 출발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김대중은 죽어서나마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여전히 변질된 이념에 매몰돼 허우적거리고 있다. 보수꼴통과 빨갱이라는 극단의 대립이 이념갈등으로 포장되고 있고, 이런 망국적인 일탈이 서로간에 애국으로 호도된다. 우리사회에선 이미 보혁의 상호 견제와 보완 기능은 죽었다. 오로지 아군과 적군만이 있을 뿐이다.

내집, 내 일터를 잃는 것에 본능적으로 항거하던 사람들까지 떼죽음으로 몰아갔으면서도 책임은커녕 빨갱이로 매도하기에 급급하다. 용산참사를 방치하는 한 김대중의 영정 앞에 줄줄이 분향하는 그들의 모습은 결코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김대중을 추모하려면 우선 그의 실체부터 제대로 알 것을 주문한다. 그는 절대로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처절하게 핍박만을 당한 민초였다. 그 탄압의 과정이 철저히 이해되고 또 그것을 제공한 원인자의 참회가 있을 때만이 비로소 그는 영면을 얻을 것이다.

그가 죽고 나서야 뒤늦게 밝혀지고 있는 구구절절한 휴머니즘, 그리고 통일과 평화에 대한 간절한 갈구가 왜 그토록 빨갱이의 소행으로 내몰렸는지, 이것을 알아야 '후광 김대중'의 유지는 오래오래 지속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