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탓이요
제 탓이요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19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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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이수한 <모충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3개월여 만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대선의 구호 가운데 하나였던 '잃어버린 10년'의 두 주인공이 영면에 들게 된 것입니다. 먼저 두 분 전직 대통령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해 봅니다.

한편 지난 10년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보통 경제 성장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외환위기라고 하는 IMF사태는 그 이전의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지난 10년간 경제는 꾸준한 성장을 이루어왔고 그 결과로 IMF사태를 극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경제 상황은 지난 정부의 탓으로만 돌려지고 있습니다.

현 정부에 들어서서 경제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의 결과로 전 세계가 동시에 겪고 있는 문제이기에 현 정부의 잘못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미리 준비하지 못한 지난 정부에 그 책임이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특히 필자는 지난 10년간의 정부가 이룬 업적 가운데 하나로 권위주의의 청산을 들고 싶습니다.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언론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고, 감사원이나 검찰의 권력을 정권유지를 위해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며, 특히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하여 국민의 인권신장을 도모했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이후 다시금 권위주의로 회귀되고 있지는 않은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언론 관련법을 무리하여 통과시키고, 지난 정부에서 공공기관의 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아직 임기 중에 있다는 이유로 물러나지 않는다하여 감사원을 동원 압력을 행사하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축소하는 등의 모습은 괜한 걱정이 아님을 반증한다 하겠습니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보통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는 서로가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잘하고 상대는 늘 잘못한다는 생각을 없애지 않는 한 싸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방 한가운데 물그릇이 있었는데 누가 발로 차 엎질렀다고 합시다. 앉아 있던 사람은 엎지른 사람이 부주의해서 그렇다고 야단을 칠 것이고, 엎지른 사람은 누가 물그릇을 여기에 놓아두었느냐고 대들 것입니다. 물은 엎질러졌는데 잘못한 사람은 없으니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을 엎지른 사람은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물을 떠온 사람은 내가 하필 물그릇을 방 한가운데 두어서, 옆에 있던 사람은 물그릇이 방 한가운데 있는 것을 보고도 치우지 않아서라고 서로 제 탓으로 돌리면 싸움은커녕 화기애애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를 기점으로 여와 야, 보수와 진보,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강자의 논리보다는 약자의 입장에서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는 관용과, 상대를 탓하기보다는 모든 과오를 제 탓으로 돌리는 지혜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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