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의 어록
인동초의 어록
  • 문종극 기자
  • 승인 2009.08.1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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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인동초'(忍冬草)는 겨울을 이겨내는 꽃이다. 엄동설한에도 잎과 줄기가 얼어 죽지 않고 견디다가 이듬해 여름이 되면 화사한 꽃을 피운다.

고난과 인내를 연속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별호가 인동초다. 그의 인생역정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혹독한 고통을 수 없이 겪었지만 "그때마다 마치 인동초처럼 살아나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그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큰 획을 그었다. 민주화의 상징이며, 한민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로 세계평화와 인권대명사로도 불렸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과 50년 정치인생을 마감한 그의 궤적을 수많은 어록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달변가이자 뛰어난 대중연설가였던 그는 때로는 치밀한 논리로, 핵심을 찌르는 표현으로, 화려한 수사로 좌중을 압도했다.

특히 87년 사면·복권이 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온 그는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현미경처럼 치밀하게 보고 망원경처럼 멀리 봐야 한다" 등은 그가 자주 사용했던 문구다.

또 한국 현대 정치사의 역동성을 대변한 "정치는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과도 같다", 92년 대선운동 과정에서 말한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등은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97년 '준비된 경제대통령'이라는 구호로 대권 도전 4수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햇볕정책', '제2의 건국' 등으로 자신의 통치철학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밖에도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이 주인 되는 정치'를 국민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다", "국민의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시키겠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동전의 양면이고 수레의 양바퀴와 같다", "햇볕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감싸기도 하지만 음지에 있는 약한 균들을 죽이는 것도 햇볕", "여러분이 보고 싶어 이곳에 왔다"(평양 방문 성명) "정권에는 임기가 있지만 국정에는 임기가 없다" 등등.

한국 민주주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그의 50여년 정치역정이 숱한 어록에 오롯이 담겨있다.

식민지와 군부독재의 역사가 우리의 부끄러운 기억이라면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다. 하나는 제국주의에 끈질기게 저항한 독립투쟁이고 다른 하나는 군부독재에 치열하게 맞서 싸운 민주화투쟁이다.

김구 선생이 독립 투쟁의 상징적 인물이라면 김대중은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였기에 한국 역사에 남긴 족적도 크다. 족적만큼이나 많은 정적을 남기기도 했다. 국민으로부터도 확연한 '호불호'를 가진 정치인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와 민족화해를 향한 고인의 열망과 업적은 국민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 만큼 큰 정치 지도자였다. 생전의 뜻인 남북화해와 국민 통합은 남은자들이 이어 가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김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보고를 받고 "병석에서도 우리 사회의 화해를 이루는 계기를 만드셨다"며 거듭 애도의 뜻을 표시하면서 "예우를 갖추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장례를 정중히 치를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나라의 큰 어른이 떠나면 그 빈자리는 클 수밖에 없다. 그가 생전에 쏟아냈던 어록 중 "국민이 주인 되는 정치"를 남아있는 정치인들이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겨울을 이겨내는 '인동초'는 여전히 국민들 곁에 있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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