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후예들
카인의 후예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1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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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이사>
이명박 대통령과 YS가 병상의 DJ를 찾아 그의 업적을 치켜세웠고 한나라당 중진의원들도 앞다퉈 김대중 재평가를 입에 올렸다.

10년을 잃어 버렸다며 기를 쓰고 헐뜯던 것이 바로 엊그제인데, 불과 며칠 사이의 변화가 참으로 엄청난 격세지감으로 다가온다. 이런 행위의 진정성이 의문스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어쨌든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발함이다.

하여 이런 가상을 한번 해 본다. 만약 이런 광경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에 벌어졌다면… 아마도 부엉이 바위의 참극은 없었을 것이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만큼 적대적 공생관계를 즐기는 나라도 없다. 끝간 데 없이 반목하고 다투면서도 서로는 이에 기대어 각각의 체제와 삶을 이어간다. 남북 관계가 그렇고 국내의 정치구조가 그렇다. 적대적 관계를 악용해 권력을 유지하는가 하면, 기득권을 지키는 데 있어서도 이만한 호재가 없는 듯하다.

문제는 이런 변태적 구조는 필연적으로 강자들의 득세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적대적 공생이라는 것 자체가 늘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라를 옥죄고 있는 여야 대립과 보혁 갈등도 지겨운 판에 또 다른 형태의 적대적 관계가 모색되고 있다. 보수의 계속되는 강공 드라이브에 맞서 이명박 정권을 반민주로 규정한 진보와 시민단체가 거국적인 반MB연대 상설화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이명박 정권의 타도를 통해서만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치 사회적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마저 동원된다.

이런 판국에 정작 우려되는 것은 역사인식의 퇴행이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80년대식 이분법적 정치구도를 곧추세우는 게 과연 얼마만한 설득력을 갖느냐부터가 의문이 생긴다. 실제로 이런 구도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진보 내부에서조차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 지금 한국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20년전에 이룩한 정치민주화를 실제적인 사회경제민주화로 승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집권 세력이 밉다고 해서 20년전에 이룩한 민주화까지 깡그리 부정할 수는 없다. 한국 사회와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스스로 깎아 내리겠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무리 적대적 공생관계를 관성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지금의 한국사회를 민주 대 반민주로 규정하는 건 이만저만 자가당착이 아니다.

또 있다. 역시 지난 반세기 동안 적대적 정치구도에 길들여진 국민이라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 불거진 이명박 정권에 대한 악마화와 노무현에 대한 신화화는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몰아간 현 정권의 과오는 철저하게 책임을 추궁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민주적인 절차의 선거로 뽑힌 대통령 자체를 배척할 수는 없다. 노무현의 죽음이 서럽다고 해서 지금처럼 그의 모든 것이 신격화되는 것도 문제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그 어떤 인물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우리나라에선 반드시 실패한다는 자조를 떨쳐버릴 수 없다.

지난 8.15 경축행사의 대표적 화두는 국민통합이었다. 현대 아산 현정은 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에도 숨통이 트이고 있다.

이젠 적대적 관계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부터 나를 내세우기 전에 상대를 이해하고 먼저 끌어 안아야 한다. 진심으로 이를 수행할 때만이 비로소 전직 대통령 자살이라는, 그 저주의 업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들을 족치고 잡아들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증오와 질시에 사로잡혀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지만 바로 그 순간 스스로는 평생 정착하지 못하고 나그네가 되어 떠도는 운명을 맞게 된다. 증오와 미움은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을 타락시킨다.

적대적 관계는 결코 공생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피투성이가 된 아벨의 옆에서 뒤늦은 후회를 하는 카인의 후예를 여전히 자초하고 있다. 이런 어리석음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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