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포식
악마의 포식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2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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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강태재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전쟁범죄를 논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악행을 저지른 독일과 일본의 잔혹행위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일이 아우슈비츠 만행을 사실 그대로 드러내고 참회와 반성으로 일관해 오고 있지만, 일본육군 731부대가 만주에서 저지른 생체실험을 철저히 감추고 부정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저지른 가장 잔악한 반인간적 전쟁범죄를 저지른 두 나라가 패전이후 걸어온 길은 정반대입니다. 독일은 범죄 실상을 낱낱이 밝히고 참회와 용서를 빈 반면 일본은 생체실험 결과를 미군에 넘기는 대가로 범죄사실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치'씨는 목숨을 걸고 일본군 731부대의 생체실험 만행을 파헤쳤습니다. 731부대는 1933년부터 일본전역에서 의사, 학자 등 연구자들을 군의관이나 군속기사로 징발하여 세균이나 독가스 등 화학전의 연구와 무기개발을 목적으로 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조선인 등 3000여명을 생체실험으로 학살했습니다.

이러한 만행은 1981년 '악마의 포식'이라는 넌픽션으로 발표됐고, 300만부가 팔리는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습니다. 악마의 포식은 다시 노래가 되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원작자가 시를 쓰고 '이게나베 신이치로'씨가 작곡한 합창곡은 1984년 초연이후 묻혔다가 1990년 일·중 우호협회 창립 40주년 기념 콘서트의 성공으로 일본전역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일본종단 20개도 순회공연, 유럽과 중국 등 해외공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처음 일본종단 콘서트 당시에는 극우보수파로부터 살해위협을 받는 등 목숨을 걸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죄없는 사람들을 죽인 전쟁을 두 번 다시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염원과 그들의 선조가 저지른 죄를 참회하고 용서를 빌기 위해 공연을 한다는 것입니다. 1998년 731부대 생체실험 만행의 땅 '하얼빈'에서, 유조호사건 발생지 '선양'에서 참회의 노래를 불렀고, 이후 남경과 북경 그리고 폴란드와 체코에서, 그리고 이제 한국 서울과 청주에서의 참회공연 및 노근리 추모행사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모치나가 노리코' 사무국장은 말합니다.

<'악마의 포식'을 노래하는 합창단 전국연락회의>의 조직과 운영방식이 퍽 특이합니다. 일본전역에서 참여를 희망하는 합창단원들이 각자 자기 고장에서 연습한 다음 공연장소에 합류하여 콘서트를 여는 방식입니다. 한국공연을 위해 이들은 각자 20만엔 정도의 경비를 본인이 부담하여 참가하는 것입니다.

일본전역 유료공연에서 전회만석, 유럽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악마의 포식'이 청주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합니다. 사죄를 위한 해외공연은 전석무료 초대공연이라는 '악마의 포식' 청주공연은 28일 저녁 7시 예술의 전당 대공연장입니다.

이번 공연에는 '악마의 포식' 합창 외에도 9·11 미국 뉴욕 테러사건을 다룬 '정의의 기준' 혼성합창조곡, 북패 '와다쓰미'의 북연주 그리고 지휘 겸 작곡가의 인사와 원작자의 이야기 마당도 준비돼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자기 나라 군대의 전쟁범죄를 자진폭로하고 사죄를 비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치와 일본군국주의의 만행과는 다르지만 6·25와 미국의 베트남전쟁에 끌려들어간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악마의 포식'을 노래하는 합창단에 눈길이 가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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