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와 미국영화
한국영화와 미국영화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02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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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미국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2'는 영화 장르의 속성인 사회성을 그대로 반영한 영화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2'가 전편의 무대였던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을 떠나 지상 최대의 박물관으로 일컬어지는 스미소니언박물관으로 확장됐다는 점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화석화된 박물관의 유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에 감탄하면서 그 흥미진진함을 영화의 가치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2'를 곱씹어보면 철저한 미국적 사고방식과 현재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암묵적 장치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2'는 전편과는 달리 주인공의 경제적 가치가 확연하게 다르다.

무능하기 그지없던 가장의 역할을 맡았던 전편의 주인공 래리 데일리(밴 스틸러)는 속편에서는 아이디어 상품 개발을 통해 전도유망한 기업의 CEO로 신분상승했다.

주인공의 직업과 경제적 부의 축적이 이야기 구조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래리의 신분상승은 극심한 경제위기에 처해있는 미국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은근한 연관성이 있다.

이런 종류의 영화가 늘 그렇듯이 '박물관이 살아있다2' 역시 선과 악의 대결과 더불어 판도라의 상자와 절대 능력의 매개물 역할을 하는 '아크멘라의 석판'이 등장하는 이야기 구조를 지니며, 오히려 이런 플롯은 전편에 비해 훨씬 진화한다.

게다가 가분수로 머리만 큰 아인슈타인 버블헤드 인형 기념품과 팝 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우는 여인'(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화제가 됐던 '행복한 눈물'로 익숙하다) 아이젠슈테트의 역사적 사진작품 '승리의 키스'를 변형시키는 기발한 발상은 이 영화의 사회성과 미국적 문화우월주의의 저의를 드러낸 것으로 우려된다.

이 영화가 여성 최초의 대서양 횡단 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에이미 애덤스)를 등장시켜 도전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 그리고 전시 유물과 인간과의 감정 교류를 시도한 점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2'는 소시민적 분투는 그저 과정일 뿐, 결국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데는 거대한 링컨의 조각상에 일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혹시 그런 건 아닐까. 서서히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미국의 경제 위기가 일반 시민에 의해서가 아니라 절대지존의 위대한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한계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배경에는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엄격한 구분의 잣대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국영화 '거북이 달린다'(감독 이연우)는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을 저절로 만들어 내는 썩 잘 만든 영화다.

이 영화 '거북이 달린다'는 이야기 구조가 상당히 치밀할 뿐만 아니라 섬세한 연출력도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체화된 충청도 사투리로 전달하는 유머와 페이소스가 가히 위력적이다.

별 볼일 없는 시골 경찰서(충남 예산이 이 영화의 무대가 된다)의 형사가 출중한 싸움 능력을 지닌 탈주범과 대결하는 플롯은 평범하다.

그런데도 주목되는 것은 탈주범을 전문적으로 추적해온 소위 서울경찰이라는 주류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 비주류의 끈질김이다.

그런 끈질김에는 자식에 대한 애틋하고도 무한한 사랑이 녹아 있으며, 다 헤진 팬티를 입으면서도 삶에 대해 전혀 지치지 않는 아내에 대한 숨겨진 애정이 담보되어 있다.

실컷 웃으며 즐거워하다가도 마지막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힘.

그 힘은 소시민과 비주류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나는 그런 한국영화에 박수를 보낸다.

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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