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6·25전쟁 59주년을 앞두고 6·25전쟁 최초·최대의 승전지인 충주시 신니면 동락리의 '동락전투 전승지'를 성역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약 60년의 세월이 지난 이제서야 이같은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 먼저가신 선열들에게는 한없는 죄스러움으로 느껴지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하는 것은 그래도 아주 잊혀지기 전에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보존할 수 있는 논의를 했다는 것이다.
이제 지역주민은 물론 충주시와 충청북도 및 정부가 적극 나서 동족상잔 비극의 현장을 제대로 성역화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국민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요 의무일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동락리 전투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우수한 소련제 무기로 중무장한 북한군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와 개전 3일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한 후 남쪽으로 진군하는 그야말로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벌어진 전투다.
연전연패 속에 조국의 산천이 피눈물로 물들고 있던 7월 7일, 북한군 제15사단 48연대 3000여명의 병력이 동락리 동락초등학교 운동장에 집결했다는 소식을 이 학교 김재옥 여교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인근에 매복해 있던 국군 제6사단 7연대 2대대에 제보한다.
300여명의 국군들은 총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동락초등학교로 목숨을 건 채 돌진했고 3000여명의 북한군은 제대로 총 한 번 쏘지도 못한 채 기습을 당해 2186명이 사살됐고, 아군측은 포로 132명, 곡사포 등 최신식 소련제 무기 1144점을 노획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이 전투는 한국전 최초·최대의 승전보로 패전만을 거듭하던 당시 국군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한국전에 소련이 개입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노획한 소련제 무기를 UN에 보내자 결국 16개국의 UN군이 파견돼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위대한 전투로 '6·25 전쟁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전승지였음에도 그동안의 초라한 관리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해매다 7월 7일이면 그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역전의 용사들과 유가족들이 소수의 지역주민들과 함께 동락초등학교 교정에 모여 기념식을 갖고는 있으나 이 행사 역시 초라하기 그지없다.
현재 조성돼 있는 김재옥 여교사 기념관 및 전승비 역시 경북 칠곡군의 다부동전투전적비 등 타지역의 기념비 및 기념관에 비교하면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지난 2007년 필자는 김복수옹(6·25참전전우회충주시지회장) 및 참전용사들과 정우택 도지사를 면담해 충청북도 소유로 돼 있는 전승비 부지를 충주시로 이관해 달라는 요청과 함께 충주시에 전승비 주변의 정화사업을 강력히 요구했었다.
이제 동락전투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오늘에 되살려 다시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그때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을 영원히 기리기 위한 성역화의 대열에 충주시는 물론 153만 충북도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충청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