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눈을 찌르다
제눈을 찌르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22 21: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영희 <수필가>
   아침에 거울을 보고 기겁을 했다. 왼쪽 눈머리가 시뻘겋게 된 것이다. 되짚어 생각해 보니 어제 저녁에 눈 밑에 좁쌀 같은 것이 보여서 실 핀을 찌른 것이 결정적인 원인 같았다. 빗나갔지만 눈물만 쏟아져서 천만다행이다 싶었는데 그 영향이 이제서 나타난 것이다.

지난 주말 사무실에서 등산을 가기로 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가 제일먼저 순간적인 고민으로 다가왔다. 이런 눈으로 가면 유행성 결막염으로 알고 전염될까봐 기피할 텐데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충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충혈이 된 것을 일이 생겨서 못 간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인생이란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가 세상과 하직할 때만 선택을 할 수 없다고 하더니 아침부터 작은 갈등에 휩싸인 것이다. 크게 표시나지 않으니 다녀오라는 남편의 말에 힘을 얻어 가는 쪽으로 결정을 하고 안경을 썼다. 이럴 때는 선글라스가 있으면 좋으련만 평소에 선글라스 쓰는 습관을 들이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혼자 타는 좌석에 앉았어야 했는데 습관처럼 2인 좌석에 동승을 했다.

유행성 결막염이 아니니 괜찮다는 무언의 시위라도 하듯 자리에 앉아서 눈높이를 가늠하자 내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이 이내 들었다. 다시 바꿀 수도 없어 제 눈을 제가 찔러서 이렇게 되었다고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부연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수령이 천년이나 되었다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발목을 붙든다. 천년이란 억겁의 세월에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도 의연하게 뿌리내리고 버팀목이 되어서 국란이 일 때는 우는 소리를 낸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수호신 같은 나무이다.

나무지만 그 강인한 생명력과 위용에 경외심이 인다. 더 나아질까하는 욕심을 내어 제 눈을 찌르고 그 작은 일에 연연한 것이 못내 부끄럽게 느껴졌다. 찜찜한 마음을 털어버리려고 등산을 하기 전 속세의 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천년 고찰 영국사에 들렀는데 방석을 내미는 남정네 옆 보살의 모습이 낯 익는다. 어렸을 적 이웃집 언니 같은 이미지였는데 독경시간인데다 일행들이 있으니 삼배만 하고 나오면서도 그 보살이 못내 궁금했다.

그 언니는 예쁘고 상냥해서 따르는 남학생들이 많았는데 어린 나이에 어느 남자와 눈이 맞아서 임신을 했다. 지금은 처녀가 임신을 해도 혼수 품목 1호라고 축하를 하지만 그 시절은 딸을 잘못 간수했다고 부끄러워하던 시절이었다.

결혼을 해서 잘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 남자가 방랑기가 있는지 떠난 뒤 종무소식이었다. 해산날이 다가오자 언니 어머니는 몸이 달아서 들며 날며 "제 눈 제가 찔렀지 누가 찔렀냐."고 소리를 질렀다. 어릴 때지만 제 눈 찌른다는 말을 저런 경우에 하는 것이고 오죽 아프겠느냐는 생각이 들게 해 반면교사가 된 셈이다.

과년한 나이가 되어 여기 저기 중매가 들어왔지만 이미 마음속에 잠재된 사람이 있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콩깍지가 씌어서 그 순간만큼은 제 눈을 제가 찌른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첫인상같이 성실함으로 믿음을 주어서 제 눈을 제가 찔렀다는 소리는 듣지 않고 살았는데 암벽을 오르며 그 불편함을 실감했다.

내 고뿔이 남의 염병보다 더하다는 속담같이 순간에 제 눈을 제가 찌른 실수로 신경이 많이 쓰이고 괜스레 위축되었던 하루였다.

이렇게 단번에 나타나는 실수는 금방 알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지만 제 눈을 제가 찌르는지도 모르고 하는 말이나 행동의 불찰은 어떻게 되돌아 올 것인가.

인과응보가 되어 부메랑효과를 일으킨다는 인식으로 더 많이 삼가며 마음 밭을 일구어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