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반성과 사회현실의 역학관계
철학적 반성과 사회현실의 역학관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1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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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세상이야기
김귀룡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갑갑한 심정이다. 현실에 눈을 뜨고 있자니 출구가 보이지 않고 눈을 감고 있자니 양식이 허락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분명히 뭔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변화의 조짐도 보이지 않고 그나마 변화시킨다고 하는 말도 시늉에 불과할 뿐이다. 귀가 닫혀 있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없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해도 이미 귀가 닫혀 있으니 그 말조차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철학에서는 지엽적인 문제와 근원적인 문제가 있으며 지엽과 근원 사이에는 엄정할 정도의 위계가 있다. 마치 나무에 뿌리와 줄기, 가지, 잔가지, 이파리가 있는 것처럼 철학적 문제에는 본말(本末) 구분이 엄격하다. 지엽적인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지 않으며 그 적용 범위가 넓지 않고, 수명도 그리 길지 않다. 이에 비해 근원적인 문제는 수명이 길고 그 파급효과도 상당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초기의 철학자들이 제기한 문제가 지금도 유효한 것은 그들이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에서는 가급적이면 근원적인 문제를 붙들고 늘어지는 게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사회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근원적인 문제제기 상황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근원적인 문제는 그 속성상 사회의 근간을 좌우할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적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만드는 사회는 안정된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역사상 철학적으로 근원적인 문제가 논의된 시대는 대체적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서양근대의 르네상스 시기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철학적,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현실정치에 참여하게 되면 사회는 극단으로 치닫기 쉽다는 걸 우리는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 상황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 곧 권력기관의 중립성, 국토개발계획, 정치권력의 민주성, 표현의 자유 등에 관한 문제는 시급한 문제이고 지금 당장 파급효과가 큰 문제이기도 하다. 이 같은 문제는 어떤 면에서는 위정자들이 합의하고 결정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지금 제기되고 있는 문제를 보면 지금은 철학적인 근본 반성을 요구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근원적 반성을 요구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는 혼란한 시기도 아니고 획기적인 변혁의 시기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정자들이 귀를 열고 민심(天心)을 듣고자 하지 않는다면 제기되는 문제의 성격이 변할 수 있다.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는 메아리가 없거나 더 이상 외치는 것이 무의미하게 되면 반성의 방식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구체적인 사안의 존폐가 아니라 민심이 무시되는 상황이 문제의 전면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시민 권리의 위임자라고 할 수 있는 위정자와 민심 사이의 관계는 사회적으로도 그렇지만 철학적으로도 근원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민심을 천심(天心)으로 받들어야 하느냐 아니면 소수 엘리트에 의한 파워정치를 구현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고대의 동서양의 철인들은 심각하게 고민한 바 있다. 사람들의 의견을 천심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대중들의 변덕스러운 외침 중의 하나로 볼 것인가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이 사회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호미로도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려우면 상식으로 돌아가 생각하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들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이 상식적으로 볼 때 최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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