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바르는 약
마음에 바르는 약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5.12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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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반숭례 <수필가>
   어젯밤에 '마음에 바르는 약' 이라는 좋은 글을 읽었다. 단어 몇 글자로 이루어진 말들이지만 사소한 작은 것들이 우리의 삶을 바꾸기도 하는 내용이었다. 세상어디에든 약을 파는 곳은 많은데 '마음에 바르는 약' 파는 곳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내가 근무하는 지역아동센터 공부방에는 얼룩진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다. 학교 끝나고 교문 밖으로 나오면 학원 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다른 친구들은 마치 엄마가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것처럼 서로 이름을 부르며 주루루 몰려가는데 2학년인 은지는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울상이 되어 둘레둘레 누군가를 찾아보는 눈치지만 은지를 부르는 사람은 엄마아빠가 아닌 공부방 선생님이다. 가슴이 찡하다. 쫓아가서 은지를 끌어안으며 호들갑을 떤다. 말간 눈망울에선 벌써 눈물이 고였다.

은지는 아빠와 함께 할머니 집으로 온 지 다섯 해가 지났다. 할머니 집에 와서 유치원을 다니던 중 집으로 돌아가면 은지와 놀아줄 친구가 없어 이웃의 도움으로 공부방에 오게 되었다. 공부방에는 은지보다 더 큰 언니 오빠들이 많고 같은 또래 친구들도 있는데 왠지 울기만 하는 울보였다. 달래고 얼레 보아도 두 눈 딱 감고 울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가 한순간 그치곤 한다. 공부방에는 은지처럼 아빠와 함께 살거나 엄마와 사는 아이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움과 기다림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은 울지도 않고 투정도 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호기심을 좋아하고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인생의 쓴맛을 이미 맛본 상처받은 마음은 얼어붙은 빙벽과 같아 눈빛 한번 제대로 맞추려 하지 않는다. 엄마가 없는 아이들은 항상 불안하다. 창문을 열어 밖을 자주 내다 본다.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아이들의 닫혀있는 마음을 열어볼까 하는 의도에서 글쓰기를 시도했다. '읽어보자. 써보자' 이 말을 싫어하고 거부한다. 그러나 거부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글쓰기 시간에 주제의 첫머리는 내가 써놓고 글을 이어 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공부방에 와서도 아이들은 공부방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학교 끝나고 거리를 배회한다거나 방치되는 아이들을 막기 위해 운영하는 공부방이기에 자유스럽게 학교 수업과 이어지도록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다.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아이들의 생각도 바뀌고 지적 능력도 향상되고 특히 예절교육은 시기를 놓치면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이들 사이에 입 소문이 돌아 맞벌이 부부들은 자녀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겨 공부방 문을 두드리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어 미안하고 죄송스럽기도 하다.

'마음에 바르는 약' 중에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머리로 잰 마음을 다시 되감지 말고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 하라고 하였다. 어린이들은 사랑 속에 몸도 마음도 생각도 커진다. 그러나 정을 주고 싶어도 미운 놈이 있고, 미운 짓을 하는데 정을 듬뿍 쏟고 싶은 아이가 있다. 또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남을 위한 배려나 이해와 용서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상처는 남이 아닌 자신이 살아가면서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서 모른다. 작은 가슴을 안고 사는 어린이들은 호기심도 많고 상상력도 풍부하다. 하늘땅보다 더 큰 희망과 사랑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탈무드에 이런 글이 있다. '입보다 귀를 높은 지위에 올려놓아라.' 상대를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는 것은 말이 아니라 귀를 크게 열고 따스한 보살핌의 눈길로 바라보고, 이해해주고, 기다리며 보듬어 주는 일이 상처 난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마음에 바르는 약'이 되는 것이리라. 공부방 아이들은 나를 할머니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예부터 '할머니 손은 약손' 이라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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