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울음소리엔 사연이 있다
새들의 울음소리엔 사연이 있다
  • 김성식 기자
  • 승인 2009.05.11 2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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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
   "제집 죽고 자석 죽고 서답빨래 누가 할꼬." 얼핏 들으면 징글히도 박복한 어느 홀아비의 신세타령처럼 들리겠지만 엉뚱하게도 경남지역 사람들이 멧비둘기 울음소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구구~ 에에~" 울어대는 소리가 마치 "마누라 죽고 자식도 죽었으니 속옷빨래는 누가 할꼬"라며 한탄하는 것으로 나타낸 것이다.

우리 민간설화에는 또 소쩍새 울음소리와 관련한 다음의 이야기가 전한다. 먼 옛날 지독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밥주기가 아까워 아주 작은 솥으로 밥을 짓게 했는데, 결국 밥을 지어도 먹을 것이 없게 된 며느리는 굶어죽었고, 그 불쌍한 넋이 소쩍새가 되어 밤마다 솥이 적다고 한탄하게 된 것이 소쩍새 울음소리란 것이다. 또 옛 어른들은 소쩍새가 "소탱 소탱"하고 울면 솥이 텅텅 빌 정도로 흉년이 들고 "솟쩍다 솟쩍다"하고 울면 솥이 적을 정도로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새는 비록 같은 종일지라도 계절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소리를 낸다. 게다가 일부 새는 지역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 사투리까지 쓴다. 그러니 같은 종의 새소리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달리 들을 수 있고, 표현 역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 나와 있는 조류관련 서적 대부분도 각종의 울음소리가 제각각 표현돼 있다. 세계적 멸종위기종 크낙새도 이같은 울음소리의 '제각각 해석'으로부터 명칭이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1800년대 후반 유럽인들이 대마도와 한반도에서 이름모를 새를 채집, 런던 동물학 잡지에 첫 발표하면서 이 새의 울음소리를 '클락(Clark)'으로 표현함으로써 훗날 크낙새로 불리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학자들은 이 새의 울음소리를 '끼이약 끼이약' 혹은 '클락 콜락'으로 표현하고 있다.

새소리는 조류연구가들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종을 구분하거나 암수를 구별할때 또는 둥지를 찾을 때 단서가 되는 것이 새소리이기 때문이다. 기자 역시도 생태사진을 찍기 위해 새를 찾아 나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새소리다.

딱따구리류의 드러밍(Drumming)을 비롯해 일반적인 새들이 번식기에 내는 Song과 그외의 울음소리인 Call을 구분할 줄 알게 된 것도 바로 그들의 '소리'에 귀기울인 경험 덕분이다.

어제는 그러한 경험 덕을 톡톡히 봤다. 지난 3월 중순 둥지 짓는 것을 처음 발견한 이후 4월 내내 관찰해 오던 물까마귀 둥지가 어느날 졸지에 빈 둥지가 된 것을 보고는 크게 상심했었는데, 바로 어제, 괴산 선유동서 알 품는 물까마귀 둥지를 새로 찾아낸 것이다. 몇년 전 그곳서 한 쌍을 목격한 일이 생각 나 혹시나 하고 찾아갔더니 기다렸다는 듯 "찌이 찌이" 독특한 소릴 내는 게 아닌가. 직감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바위 뒤쪽을 살펴보니 영락없이 이끼로 지어진 둥지가 매달려 있고 그 안엔 어미새 1마리가 들어앉아 목하 새생명을 탄생시키느라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가슴이 쿵쾅거렸다. 한데 그날은 가슴 아픈 일도 겪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름전 찾아놓은 원앙 둥지가 궁금해 들렀더니만 아뿔싸! 30개가 넘는 알이 몽땅 사라졌다. 인근 주민에게 물으니 사람 소행이란다. 처절한 마음으로 이번엔 강변의 꼬마물떼새 둥지를 찾았다. 역시나였다. 알 4개가 사람 발길에 무참히 밟혀 깨져 있었다. 기가 막혔다. 가장 숭고한 대내림의 임무를 위해 자연계에선 일생일대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것을 보듬어야 할 인간계에선 무자비한 일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 Song을 부르던 새들이 사람만 만나면 갑자기 경계음(Call)을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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