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육과정에 정규 노동교육을 허하라
학교교육과정에 정규 노동교육을 허하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5.0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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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허건행 <전교조 충북지부 부지부장>
허건행 <전교조 충북지부 부지부장>

지난 5월1일은 메이데이(May Day) 노동절이었다. 초등학교부터 12년 학생 생활 중 노동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반면, 근로라는 말은 자주 들었다. 상황은 대학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원찮은 기억력 덕분이리라 스스로 위로하지만 덜 익은 감 먹은 듯 떨떠름하다.

노동과 근로는 일한다는 의미에서는 이음동의어이다. 하지만 명제가 내용과 의식을 규정할 수 있다고 보았을 때 두 개념의 사회적 의미는 큰 차이가 있다. 더욱이 행동 유발의 동인인 의식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노동과 근로가 갖는 차이는 한 사회를 규정지울 만큼 크다. 노동은 단순한 생계유지의 수단이 아니다. 자아와 주체의 실현이며 상생의 공동체 완성을 위해 삶을 꾸리는 일련의 사회 참여이다. 노동은 능동적 행위자로서 사회에 기능한다. 노동은 다수로서 노동자들의 넋이 깊이 새겨져 있는 신성한 말이다.

반면 근로는 사용자의 관점에서 노동의 가치를 비하시키는 개념이다. 근로는 노예의 철학이 담겨있는 왜곡된 사회적 용어이다. 인류는 역사 속에서 노동에 대한 가치 찾기를 치열하게 전개해 왔다. 노예적 삶을 끊어내기 위해 왜곡된 사회의 불화로에 몸을 던진 노동자들이 역사의 새로운 동인으로 기여했다.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가 사회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진리를 실천한 사람들, 노동절은 그들의 족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흔치 않는 세계적 명절이다. 문화적 자산이 풍부한 사회는 사람들이 품위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사람들은 노동절을 일상의 품위 있는 삶을 지향하는 길잡이로, 냉혈 자본의 바다에 촘촘히 떠있는 등대로 여기며 기린다. 노동절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이다. 또한 노동에 대한 인식의 정도는 나라의 문화 수준을 나타내는 기준이다. 노동은 인간의 기본적인 문화 생산능력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사회적 틀 속에서 소통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기업프렌들리 사회에서는 노동의 문제를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로 비틀고 구부려 버린다. 시장의 허구 속에 노동을 한낱 날품팔이로 위상을 격하시켜 자본의 노예로 항구적 삶을 살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생산의 주체도 노동자요, 소비의 주체도 노동자임을 의도적인 교육과 사회시스템으로 속여 노동자로서의 주체를 잊게 만든다. 사회 전체가 노동을 비하시키고 비루하게 여기도록 의식을 강제한다.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 속에 드러난 반노동, 친자본 논리의 환경적 원인은 무엇인지, 문화를 현저히 퇴보시킨 사회 곳곳의 소통단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12년간 학교교육을 받으며 노동이라는 말의 의미를 고민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학생들, 학교에 노동과 관련된 교육과정조차 없는 나라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닐진대. 사람들은 국가가 파 놓은 무한경쟁이라는 함정에 빠져 허구와 환상의 메커니즘인 성공신화주의를 향해 맹목의 질주를 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골 깊은 양극화의 상처다. 가정은 안녕하고, 학교는 안녕하고, 사회는 안녕한가.

사회 전체가 품위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본 우위의 논리를 걷어내고 인간을 위한 자본으로 설 수 있도록 사회적 기초를 놓아야 한다. 학교교육과정에 노동교육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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