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가 궁금하다
워낭소리가 궁금하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2.1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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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워낭소리가 궁금하다. 여기서 궁금하다는 것은 잊혀져가는 워낭소리 그 자체일 수도 있고,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이야기일 수도 있다.

우선 워낭은 흔히 우리가 소방울정도로 알고 있는 것으로, 국어사전에는 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로 정의된다.

일을 하거나 달구지를 끌면서도 연방 되새김질을 하던 소에게서 들려오던 워낭소리를 기억하는 이가 지금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청아하게 달그랑 달그랑대던 그 소리의 여운은 소가 더 이상 일을 하거나 부리는 대상에서 소외된 지금 그 흔적조차 쉽사리 찾을 수 없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다큐멘터리는 대중이 지향하는 본질과는 차이가 있다. 시청률을 지상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는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는 방송의 공익성을 대변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에 만족한다.

영화에서의 그것 역시 극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채 사회적 고발이나 모순의 드러냄 등 핍진성에 의존한다.

영화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다.

그리고 소위 독립영화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 그런 영화가 1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신드롬이 분명하다.

지난 토요일 나는 영화 '워낭소리'의 신드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말 첫 회 조조상영임에도 불구하고 극장은 워낭소리를 듣고자 하는 관객들로 꽉 채워져 있다.

무려 18개의 상영관을 확보하고 있는 CGV를 비롯해 57개의 상영관이 있는 청주의 개봉영화시장에서 단 한 관만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점은 관객이 몰리는 주요 요인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이며 독립영화인 '워낭소리'에 이처럼 관객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영화 제작자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외임이 분명하다.

그런 이례적 변수 앞에서 굳이 영화 '워낭소리'의 작품성이나 흥행의 요소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인간의 수명으로 치면 거의 한계라 할 수 있는 40년 된 소와 늙은 부부의 말없는 교감은 감동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대개의 영화와 드라마 등은 픽션을 토대로 극적인 갈등과 전개를 통해 관객을 자극한다.

그 안에는 사실보다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그로 인해 흥미가 배가되면서 흥행의 성공여부를 가름하는 척도로서 구실한다.

영화 '워낭소리'는 이러한 극적재미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한 채 극사실적 접근에 충실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본질에 있다.

소가 단순히 육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우시장에서의 '부리는 소'의 찾기는 현실에서는 이미 우매하다.

그리고 그런 '일하는 소'에 대한 향수의 자극이거나, 농촌현실의 팍팍함과 고단함에 대한 작은 목소리와 영상으로서의 가치 전달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우리 스스로가 너무 달라져 있지 않은가.

혹시 영화 '워낭소리'를 봐야만이 이 시대 문화인의 자긍심을 누릴 수 있는 통로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도 그 관객의 일원으로 궁금해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볼 일이다.

신드롬은 휩쓸림에서 나타난다.

물론 그러한 사회적 현상이 대중의 철저한 자각 속에서 보다 치밀한 군중의 힘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다만 우리가 문화를 향유하는 일이 단순히 향수의 막연함이거나, 이제는 쉽게 돌아보지 못할 일들에 대한 아련함에서 유추된 휩쓸림은 아닌지.

세상에 선택할 일은 많고, 그 선택에 대한 냉철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영화 '워낭소리'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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