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자학은 다르다
반성과 자학은 다르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2.16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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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본보 편집인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심형래를 스타로 만든 것은 자학(自虐) 개그다. 몸을 아끼지 않는 바보 역할, 상식을 우롱하는 기상천외한 언행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그만의 흥행 무기였다.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형이하학적으로 변질시킨 것이다.

그의 덜 떨어진 모습을 TV로 바라본 시청자들은 전혀 준비하지 않고서도 즐거움을 느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심리학적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목격하며 일종의 비교우위적인 만족감을 내재시키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상대의 장난감을 빼앗거나 윽박지르는 행동에서조차 이런 심리가 작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심형래도 자신의 이런 이미지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영화사업을 의욕있게 벌이면서다. 본인은 명실상부한 사업가로 처신하고 싶은데 결정적일 때마다 사람들의 생각은 '멍청한 개그맨 심형래'에 머무르는 바람에 순간 순간 곤혹스러웠다는 것이다.

자학은 스스로를 무능한 사람이라고 단정짓게 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밖으로 드러날 경우 그 당사자의 정체성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삶의 끈을 놓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바로 자학이다. 나는 더 이상 안된다는, 나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패배감이 극단적인 선택을 유혹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지역사회에 자학의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 짐작컨대 충북협회와 청주상공회의소 문제가 발단이 되는 것 같다. 두 단체의 책임자가 조직을 원만하게 이끌지 못하는 데 따른 자책감이 부풀려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아쉬움은 크다. 충북협회가 회장의 역할과 자질시비로 장기간 파행되는 것이나 청주상의가 현 회장의 장기집권으로 구설수에 오른 것 자체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두 단체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은 명쾌하다. 충북협회 회장은 신망받는 인물이 맡기를 원하고, 청주상의 회장에도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안되는 현실' 때문에 자책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이를 빙자해 지역사회의 정체성까지 심각하게 깎아내리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충북협회와 청주상의 회장이 과연 지역의 본질을 논해야 할 정도로 중요하냐는 궁금증이다. 나는 아니라고 단정한다. 그렇게 중요한 자리였다면 지금처럼 방치될 수가 없다. 아마 난리가 났거나 하다 못해 무슨 대책위라도 꾸며졌을 것이다. 이들 두 단체가 그런 잡음에도 불구, 흔들리지 않게 존속됐다면 역으로 무시해도 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찮은 것이기에 명망가들이 되레 발을 들이기를 꺼린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다만 언론이 이 문제에 끊임없이 천착한 것은 반성하라는 뜻이지 두 단체가 지역의 모든 것을 재단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지역사회에 무슨 고질병이라도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지금의 분위기는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우리가 대오 각성할 것은 바로 이거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자기비하 망령, 충북이 어떻다느니, 지역 정서가 어떻다느니 하는 호사가들의 근거없는 악평이다. 하지만 그들이 문제시 하는 내용은 충북뿐만 아니라 이 나라 어디를 가도 똑같이 목격되는 인지상정의 부산물들이다. 잘 되는 사람을 시기하고 뒷공론이 많은 게 이유였다면 이젠 더 이상 자책할 필요가 없다. 다른 지역은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충북만이 손가락질을 당해야 하고, 지역을 잘 모르는 외지출신 기관장들조차 이를 당연시하며 사석의 안주로 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도민의 이름으로 주문하겠다. 앞으로 충북을 비하하는 사람들은 먼저 스스로를 되돌아 봐라. 과연 본인은 떳떳하게 살았는지. 본인 스스로가 손가락질의 대상은 아닌지. 여기에 자신이 있다면 앞으로도 줄기차게 자학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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