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고대의 막걸리와 특목고
민족고대의 막걸리와 특목고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2.1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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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고려대학교는 민족사학을 표방한다.

1905년 보성전문학교의 탄생을 개교의 시점으로 정하고 있는 이 대학은 개교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한국 최초의 민간인에 의한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의 출현 민족주의의 교육적 실현과 항일 민족투쟁의 산실 근대적 학문의 발상지로 자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려대학교의 전통은 민족과 민주, 비판과 저항, 의리와 화합, 행동과 야성 그리고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이미지로 견인되고 있다.

고려대학교는 연세대학교와 함께 우리나라 사학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대학으로 손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매년 한번씩 치르고 있는 고-연전에서 고려대는 안암골 호랑이, 연세대는 신촌 독수리를 표방하고 있다.

민족사학임이 강조되고 있는 탓인지 고려대는 '막걸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풋풋한 서민형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런 고려대는 그러나 현행 대한민국의 입시제도와 학벌중심의 사회적 영향력 탓인지 서울대 연세대와 더불어 소위 SKY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있기도 하다. 이들 속칭 일류대학을 통해야만 출세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풍조가 이미 고착화되면서 수험생을 위협하고 있는 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고려대가 최근 입시에서 그동안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고려대가 진행한 이 대학 2009학년도 수시 2-2학기 일반전형에서 고교등급제를 실시했다는 의혹이 그 다른 행보의 핵심으로, 어떤 신문은 급기야 이를 '현대판 카스트 제도'로 비판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고교등급제의 배경에는 특목고가 있다.

특목고, 즉 특수목적고등학교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0조에 의해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로 정의되고 있다. 과학과 외국어, 농업, 해양, 예술, 체육 등 특수하고 전문적인 분야를 미리 학생들에게 습득시켜 그 분야의 전문가를 조기 양성하는 목표로 설립된 특목고는 그러나 최근들어 과학고와 외국어고 등을 주로 지칭하면서 또 다른 학교교육의 왜곡현상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입시전쟁은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 치열하다. 고교평준화와 내신 성적의 반영 등이 골자로 되어 있는 현행 입시제도에서 특목고는 그 본질적인 정의와는 달리 여러 가지 과열현상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성적에 의해 일찌감치 신분의 격차를 예상해야 하는 불합리적 요소가 만들어 질 수 있다.

교육구국의 신념으로 창학한 고려대가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의혹은 기우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좋은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고려대의 궁여지책이며, 이를 통해 대학의 브랜드를 상승시키려는 욕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 땅에서 좋은 학생은 무엇이며, 그로 인해 미리부터 정해지는 신분 상승에 대한 무기력함이 과연 '교육구국'과 '민족고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심지어 일반계 고교와는 다른 엘리트 지상주의의 특목고와 그에 도달하기 위한 사교육 시장의 굴절된 비대화는 서민들을 얼마나 힘들게 할지도 마땅히 생각해 볼 일이다.

그 아쉬움은 막걸리와 민족의 이름으로 상징되는 고려대이기에 더욱 큰 것이고, 그 배경에는 개천에서 용 나기가 좀처럼 힘들다는 탄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막걸리가 명품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막걸리는 명품보다는 서민의 애환을 삭히고 일과 노동에서의 활력을 더해주는 보통의 사고방식에서 보다 풍요로워져야 한다.

나는 오늘도 막걸리를 앞에 두고 쓸데없는 호기를 부려볼 참이며, 그 와중에서 민족고대와 미리 정해지는 신분의 차이에 대한 비굴함에 처연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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