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석굴암 ①
경북 경주 석굴암 ①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16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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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이 있는 송부일의 문화재 돋보기
석굴암 외부전경
신라 1000년 역사 결정체 자랑스런 '민족문화 寶庫'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 창건 시작… 혜공왕 10년 완성
토함산 중턱에 화강암 이용 석굴 만들어 본존불 안치
38개 작품 국보24호 지정… 미술·과학적 가치 높아


송 부 일


석굴암을 오르는 길은 역사의 한 처럼 비탈에 매인 험준한 굽이 길이다.

이 길 따라 곡예사처럼 오르니 높은 산허리에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산등선에서 부는 바람여서 인지 주차장이 온통 바람의 소리 이였다. 이 바람을 안고 앞 계단 위 매표소에서 매표를 하고 오르니 흙길이 반긴다. 이 길에 억 쇠가 바람에 나부끼며 세계 문화 유산 석굴암의 흘러 간 역사를 토해 내듯 하얀 몸을 내놓는다.

신라의 재상이던 김대성이 현생의 어머니와 전생의 어머니를 위하여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어 주웠다한다.

대성은 아주 가난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인 대성은 어머니와 열심히 품을 팔아 전답을 조금 사서 살던 중 충륜 사 스님이 탁발을 와 전답을 이승에서 못한 일 저승에서 이루어진다며 시주하기를 권하였다. 이에 시주를 하니 대성이 시름시름 알 타가 그만 죽었다.

신라의 국상 김문량에게 현몽에 대성이 태여 낳을 것을 계시 받은 김문량의 아내에게 태기가 있어 아들 대성을 낳다.

용맹하고 총명한 대성은 사냥을 좋아하여 즐기던 중 곰을 사냥한 것을 후해하여 곰을 위해 장 수사를 가난했던 전생의 어머니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생의 어머니 김문량의 안내를 위해 불국사를 창건 했다한다.

그 후 석굴암에 당대의 고승 표훈, 선사를 두어 전생의 어머니 명훈을 빌고 불국사에 신림을 두어 위령케 하였다한다.

석굴암이 창건 년대가 고증 없이 내려오다가 조선 숙종 때 김시한이 석굴암을 답사하고 석굴암이 파손 하나 없었던 것을 일기에 남겨 근대의 역사가 되었다.

그 후에 두 차례 중수되고 조선 말 울산병사 조순상이 대수리하여 오다가 일제가 해체 공사를 했다.

이때 수리 중 콘크리트로 공사를 하여 자연스럽게 들어왔던 바람 햇살을 차단하여 큰 지장을 초래 했다. 굴 내부에 비가 새고 습기가 서려 재 보수 하였지만 성공치 못하고 이어져 오다가 1962년부터 64년까지 누수와 침수 방지 및 결로 방지를 위한 해체 복원공사를 하였다.

그러나 콘크리트에 붙은 원석을 해체하지 못하고 전실을 복원하면서 목조건물을 그 앞에 세워놓고 유리문으로 석굴암을 밀폐 옆에 환 풍 장치를 설치 인위적으로 공기를 순환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양 따라 실내외 명암이 달라지던 본존불 상이 입체적 조명 따라 온 누리에 빛을 냈다. 그러나 지금은 빛을 잃고 전구의 조명이 비춰주어 안타깝기만 하다.

이 안타까움에 석굴암내의 과학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석굴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석굴암은 병풍처럼 있는 암벽을 배경으로 하여 앞에 평평하게 터를 닦고 그 위에 석재를 조립한 후 흙을 덮어 굴처럼 보이게 한 석굴속의 사원이다.

석굴암 입구를 들어가면 네모난 공간에 인왕상과 사천왕상 등이 벽면에는 보살 제석 상을 화강암에 살아 있는 듯 조각하여 놓았다.

석굴암 입구에 사천왕 금강역사 등이 부조되어 있음을 일반 사찰의 입구를 상징 한다.

석굴 전실에 들어가면 벽면 좌우에 4채의 팔부신이 마주보며 서있고 금강역사가 한 채 서있다. 이를지나 석굴암 원 실의 통문 비도로 들어가는데 양측 벽면에 사천왕이 길을 인도하여 준다.

비도를 지나 석실 부처님의 세계로 중앙 본존불을 빙 돌아 전면에는 제석천 문수 보현보살이 있으며 양쪽에 5명씩 10대 제자를 조각하고 본존불 뒷면중앙 11면 관음보살을 가운데에 두고 서있다.

이 둘레 위에 10개의 감실이 있고 감실 속에 보살 나한상이 여덟 구가 배치되어 있는데 두 감실에 배치되어 있는 부처님이 일인에게 도난당하여 가슴이 아프다.
십일면관세음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 금강역사는 석굴암 입구에서 주실로 들어가는 좌우에 자리잡고 있다.

천정은 궁륭형 별자리 하늘 모양으로 가운데에 아름다운 연꽃 판을 덮었고 전실 가운데에서 보도록 하여 본존불 머리 후 면벽에 큰 연꽃으로 된 두광을 만들어 놓았다. 참배할 때 두광이 본존불 머리에 알맞도록 붙여놓은 것이다.

이 석굴사에는 38체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모두 국보 24호로 지정 되어 있다. 석굴암의 미술, 조각, 과학의 오묘한 진리이었다.

전실내의 팔부신상은 고대 인도의 악귀들인데 부처님의 설법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본당 입구를 지키는 신들이란다.

또한 팔부신상 옆에 금강역사는 부처님의 정법을 지켜주는 외호신으로 허리에만 옷을 걸치고 있으며 용맹과 날램을 표현하는데 한쪽은 입을 벌리고 또 한쪽은 입을 다물고 있다. 이를 아흠 이라고 하는데 모든 법의 최초와 최종을 상징한다고 한다.

다시 전실에서 원 실로 통하는 길비도 앞 사천왕을 바라보면 동서남북을 지키며 불국으로 가는 불자들을 보호하는 사천왕들이 서있다.

원실 본존불이 자비로운 모습, 존엄의 모습, 지엄의 모습이 있어 저절로 부처님께 합장 하게 된다.

화강암으로 만든 본존불은 높이가 2.7m로 가부좌를 하고 손의 모습은 항마촉지인이다. 이 촉지인은 석가모니께서 선정에 들어갔을 때 그의 해탈을 방해하는 악마들이 나타나 방해를 하므로 선정인의 자세에서 오른손으로 땅을 향하여 악마를 눌러 항복시킨 손의 모습이며 앉아있는 연화대는 양 복연으로 장식된 연화대 이다.

부처님의 모습은 순박하고 순수하며 아무 기교도 나타나려 하지도 않은 좌선의 고요 속에 불타의 숭고한 위엄이 넘친다. 부처님의 좌선 모습은 지순한 명상과 깊은 침묵이 감돌고 모든 것이 하나로 응결된 무의 세계와 같다. 아름다운 예술과 깊은 종교의 경지가 하나 되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모두를 반겨주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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