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16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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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교의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김 익 교 <전 언론인>

이곳으로 와 처음으로 주변숲과 정원의 나무들을 다듬고 정리했습니다.

그동안 식구들이 답답하다고 불평을 해도 "있는 그대로가 좋아, 봐 얼마나 좋은가. 이런 것을 돈 들여서도 못하는 자연조경이라고 해"라고 둘러대며 그때그때 넘어갔지요. 또 가끔 오시는 지인들과 이웃들도 "무슨 나무들이 이렇게 많어 좀 솎아내라"고 꼭 한마디씩 했습니다.

사실 그렇기는 했습니다. 5년여를 방치하다시피 했으니 시야도 가리고 공기소통도 덜 되는것 같아 답답하기는 했지요. 한사흘 굴착기가 오가고 기계톱, 가지치기하는 소음으로 시끌시끌하더니 집근처가 산뜻해졌습니다. 제멋대로 자란탓에 구불구불했던 나무들의 수형이 멋들어지고 이발을 한듯 단정해 보이는게 주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아침나절 한바퀴 돌아 봤습니다. 잘라내고 긁어낸 자리를 치웠다고는 하나 군데군데 잔일거리가 널려 있었습니다. 저걸 다 치울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

낮에 한참 콤바인으로 벼베기를 하던 동갑나기 이웃을 만났습니다. "어때 그래 금년 소출이 작년보다는 좀 나아"하고 물었더니 "아 작년 보다야 낫지, 올 가을 날씨가 좀 좋았어… 풍년이면 뭘햐 값이 좋아야 정말 좋은거지." 작황이 좋아도 말짱 헛일이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소출이 늘었어도 배로 오른 기름값과 비료대 등 영농비용 빼면 남는게 별로 없을 겁니다. 차라리 영농비 덜 들어간 작년이 수익면에서는 더 나았다고 합니다.

그나마 자기 땅에서 농사지은 분들은 수확량이 전부 내 것이고 쌀 직불금이라도 타지만 남땅 빌려 농사짓는 임차농은 그렇지도 못한가 봅니다. 영농비 제하고 임대료(도지세) 주고나면 잘해야 본전이라는 것이지요. 거기다 실질적으로 농사짓는 농민에게 지급되는 쌀 직불금은 땅주인이 챙기니 울화통이 터져도 할말이 없다고 합니다. 불평을 했다가는 내년에 땅 내놓으라고 할까봐 끽소리 못하는 것이지요.

쌀 직불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원래부터 실제 농사짓는 임차농에게는 쌀 직불금이 그림에 떡일 뿐입니다. 대부분이 땅주인이 타가지 남땅 빌려 뼈빠지게 일하는 소작농들은 언감생심 쌀 직불금 꿈도 못꾸지요. 뒤늦게 정치권에서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듯 난리들을 칩니다만 쌀 직불금제도 생길 때부터 그래왔고 또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농민들은 일거리가 많은 밭은 몰라도 논은 웬만해서는 남에게 안빌려 줍니다. 문제는 논 사놓고 현지 농민들에게 임대한 도시인들이지요. 한마디로 도지세 받고 쌀 직불금 타는 일석이조니까 혈세 걷어 배부른자들에게 퍼줬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늦게나마 정치권에서 비리차원으로 바로 잡는다니 다행이기는 합니다만 농민을 위한 답시고 정치논리로 쌈박질거리나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웃들간에도 쌀 직불금 이야기가 나오면 "오죽해서 남에 논빌려 농사를 짓겄어. 땅 없는 것도 서러운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무엇이 챙긴다고…" 아주 열들을 냅니다.

어느 신문의 1면 머릿기사 제목이 생각납니다. '눈은 대풍 마음은 흉년' 아주 지금의 농촌사정을 똑 떨어지게 표현한 제목입니다.

달빛이 차가운 밤입니다. 기르던 다섯마리 개중 한마리를 오늘 지인의 농장으로 보냈습니다.

차에 안 타려고 바둥거리는 것을 보낸 것이 마음에 걸리네요. 차멀미할까봐 물 한모금도 안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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