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들끼리의 전쟁(대리운전, 택시노동자)
가난한 자들끼리의 전쟁(대리운전, 택시노동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2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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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김 남 균 <민주노총충북본부 비정규사업부장>

우산장수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두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가난한 자들의 서로에 대한 원성을 들었다. 택시노동자와 대리운전 노동자 이들은 정말로 가난하다. 가난하기 때문에 더 절박하고 절박하기 때문에 한쪽을 원망한다.

청주지역 대리운전 노동조합, 이들과 1년이 넘게 시간을 보냈다. 야심만만하게 출발했던 것과는 달리 전년도의 대리운전노동조합은 3일만의 투쟁 끝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갈대에 줄기를 얹었던 담쟁이넝쿨처럼 날개한번 제대로 펴보질 못했다.

그리고 다시 1년이란 시간을 뒤로 하고, 250명이 넘는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다시 모였다. 그러나 그게 화근이었다. 택시노동자들의 원성이 시작됐다. 업체 과다에 따른 대리운전업체의 저가경쟁에 택시영업이 심각한 타격이 있었던지라, 대리운전에 대한 그들의 원성은 정말로 높았다.

어쩔거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 막장에 몰린 택시노동자에게 같은 노동자로서 상호 이해하고 연대하자는 것은 부처님, 공자님 말보다도 사치에 가깝다.

꽃잎 하나 떨어지면 그만큼 줄어둔 봄기운에 허전하고 낙옆 한 잎 떨어지면 깊어진 가을만큼 시름도 깊어지는데 가난한 자들끼리의 원망은 갑절이상의 허전함과 시름이다.

무릇 돌아보면 가난한 자들끼리 싸울 문제가 아니다. 난립해 있는 대리운전업체는 저가경쟁으로 치닫고 이는 택시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짓누른다. 그렇다면 규제하면 된다.

대리운전업체의 수를 줄이고 자격요건을 강화하면 된다. 저가경쟁으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대리운전노동자들의 피해도 개선될 뿐더러 택시노동자들의 영업권 피해도 줄일 수 있다.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면 된다. 수수료 명목으로 대리운전비 8000원 중에 앉아서 2500원의 수수료를 중간착취하는 대리업체 사장님들이나 사납금 명목으로 장사가 되든 안 되든 기십만원을 중간착취하는 택시회사 사장님이 다를 게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똑같이 최저임금도 적용받지 못하고 고정 급여가 아니라 임금의 크기가 개인의 영업능력에 좌우되는 두 노동자들의 제도적 문제가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사회구조와 제도의 문제를 바꾸는 데 함께 싸울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지독한 가난은 현실이고 당장 오늘의 문제다.

종부세다 뭐다 하면서 강부자 정부는 강남부자에게 선물 폭탄을 안겨주는데 가난한 사람은 우리끼리 싸운다.

그런 사이에 오늘 하루도 아무일 없다는 듯 자연스레 저물어간다. 날은 여름날인데 때이르게 떨어진 낙옆 한 잎만큼 가을도 그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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