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노후
아름다운 노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2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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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신 종 석 시인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은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어머니의 손을 잡은 어린아이와 팔랑거리며 뛰어다니는 초등학생, 한껏 멋을 부리는 중고생이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취업을 목표로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공부하는 젊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열린 도서관은 늘 붐빈다.

우리 도서관에서는 평생교육이라는 교육정책으로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잘 활용한다면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분야에 도전해 볼만하다. 평균 수명이 점점 높아지는 영향인지 해마다 어르신들의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다.

유난히 머리가 하얗고 키가 큰 어르신 한 분이 가방을 들고 걸어온다. 가까이 뵈니 전에 모시던 기관장님이다. 차를 한잔 대접하면서 "퇴직하셨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잘 지내시죠!" 하고 근황을 물으니 만나야 할 사람도, 가야할 곳도 없는, 시간만 많은 사람이라며 웃으신다. 30여년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부대끼며 살았기에 혼자만 누릴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단다. 젊음을 바친 일터에서 명예로운 은퇴를 하고 보니 처음에는 신이 나더란다. 출근시간에 쫓기지 않고 규칙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행복했단다. 그러나 일주일 정도 지나자 자꾸 불안해지며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혼자라는 외로움은 견디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이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라는 자괴감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한다. 아직도 가슴속엔 정열의 덩어리들이 울컥 울컥 치솟아 오르는데 텅 빈 하루를 바라보며 눈물이 나더라는 말씀에 마음이 애잔하다. 경제적으로는 퇴직연금으로 궁핍하지는 않지만,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이 방구석에서 TV나 끼고 둥글기는 자신의 존재가 하찮고 무력하게 느껴지더라며 "자네는 최소한 5년 전부터는 노후에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 계획을 세우고 퇴직 후의 일거리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라며 당부말씀을 하신다.

당신도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고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단다. 최고 학부인 대학원까지 공부하신 분이지만 다시 단과대학에 들어가서 젊은 사람들과 함께 공부를 하니 젊어지는 것 같다며 행복해 하신다. 중간고사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서둘러 일어서시는 모습이 아름답다.

한때 유행하던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있다. 노후가 되면 젊은 날 한번쯤 꿈꾸어 보았음직한 명문대인 하버드대, 동경대, 또는 하와이대, 예일대 같은 세계적인 명문대학에서 입학 허가서가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학교를 잘 골라야 한다. 하버드 대학생이 되면 하는 일 없이 바깥에 들락거리기만 하고 동경대 학생이 되면 하루 종일 동네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낸단다. 하와이대 학생이 되면 하루 종일 와이프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니며 구박을 받는 사람이란다. 그중 명문대는 예일대 학생이 되는 거란다. 왜냐하면 예전처럼 일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흘러 다니는 이야기는 공감이 가는 씁쓸한 우리의 노후를 말해준다.

이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아리한 봄의 향기도 멀어졌고 무성했던 여름날의 많은 이야기도 떨어지는 낙엽처럼 쓸쓸할 것이며 다가올 겨울은 매섭도록 추울 것이다.

그러나 노후에 할 일은 많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먼저 살아낸 사람으로 슬기롭게 극복했던 삶의 지혜를 봄을 맞는 아이들이나 여름을 폭풍처럼 겪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 또한 아름다운 노후를 보내는 보람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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