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隱者)의 가치
은자(隱者)의 가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18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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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세상이야기
김 귀 룡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여말선초(麗末鮮初) 고려의 72현인은 두문동에 은거하며 조선조에 출사하기를 거부했다. 학식과 인품, 경세 능력을 겸비한 인물들이지만 절개를 소중히 여겨 새로운 왕조에 입각하기를 포기한 것이다. 왕조가 바뀌었다고 해도 백성들을 보살피는 일을 등한히 할 수 없기에 두문동 72현(賢)은 회의 끝에 가장 나이가 어린 황희를 내보내 조정의 일을 보게 했다. 황희는 조정의 요직에서 봉사하면서 농사의 개량, 예법 개정, 천첩 소생의 천역 면제 등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수립, 시행해 조선조의 명재상으로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된다.

그는 또한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이들 고려의 지식인들은 성숙한 인격, 경세의 능력, 학식 등을 골고루 갖추었으나 세속적인 영예와 부, 권력에 초연하였다. 그들은 세상에 나서 자신을 과시하기보다는 나서지 않는 은둔의 미덕을 높이 평가하였다. 마지못해 관직을 맡을 경우에도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보다는 언제나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봉사가 우선이었다.

이와 같은 전통은 조선에도 이어져 선비정신으로 살아남았다. 원래 정치란 떡고물이 있게 마련이다. 통치 행위는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온갖 정책의 수립, 시행을 포함한다. 이해관계가 얽힌 집단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채택하게 하기 위해 뇌물이나 향응을 포함한 로비를 시도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에 따라 권력자들은 부패하기 쉬우며 권력이 강할수록 부패지수가 높아진다. 조선의 선비정신은 이와 같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사회를 지켜주는 안전판 역할을 수행한다. 선비정신은 권력자로 하여금 권력을 이용해 부수적인 이득을 취하는 일을 마음으로부터 금하는 기능을 한다. 출세를 목적으로 삼는 일을 부끄러워하며 공직에 봉사하게 되더라도 이를 통해 영달을 도모하는 일을 삼가게 하는 삶의 태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려는 패도(覇道)를 뿌리내릴 수 없게 한다. 예로부터 충청은 선비정신을 현실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도학자들의 주요 활약 무대였다. 예학의 대가인 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백허 윤휴, 명재 윤증 등이 충청의 각 지역에 은거하면서 성리학과 예학의 이념을 토대로 고도의 정치 행위에 종사하였다. 이들은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격을 도야하고 도학(道學)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학문을 닦는다.

세속의 정치권력 향유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산중에 은거하지만 고매한 인격과 학식으로 세간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들이 이들이다. 이들은 덕망을 갖추고 있어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고 그에 따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를 토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했던 것이다. 이들은 때로는 중앙 관직에 종사하기도 하지만 도학의 이념과 원칙에 어긋날 경우 미련 없이 벼슬을 내던지고 낙향, 은둔하여 후학을 양성하는 삶을 즐긴다. 나서지 않고 숨어 있지만 중앙무대에서 활약하는 이들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은자(隱者)의 정치가 꽃피던 지역이 충청지역이다.

요즘 세상은 세속적인 권력과 부, 영예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다툼이 지배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여유로운 삶과 즐거움이 보장되니 과정 중의 구린 점쯤이야 별로 문제될 게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세태가 이러한지라 은자(隱者)로 살면서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숨어서 삼가는 자들의 중심무대였던 지역이 홀대받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세태에 뒤질까 급급하기보다는 겸허하고 삼가는 은자(隱者)의 태도로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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