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 직지사 ③
경북 김천 직지사 ③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0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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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이 있는 송부일의 문화재 돋보기
'아들 낳는다' 속설 품은 탄생불

법당 천불 속 모습… 아들 얻고자 사람들 몰리기도
대웅전·약사전 약사여래좌상·사명각 볼거리 가득
성보박물관, 보물 금동자물쇠·석조여래좌상 전시

송 부 일

비로전 앞 약사전에는 보물 314호 약사여래좌상이 안치돼 있는데 통일 신라 불상으로 광배와 여래상이 한
돌로 조각돼 있다. 육계가 크며 얼굴이 둥글어 풍만해 보인다. 이 좌상은 절 양쪽 유허지에서 1909년 출토된 것이다. 절 입구 사적비 앞에서 안치하였던 것을 약사전을 짓고 봉안했다.

약사전 옆 웅진전은 고려 태종 때 능여 대사가 신통력으로 16나한을 모셨다고 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의 16제자들을 모신 전각이다. 그리고 대웅전 아래로 가면 임진란의 승장 사명당을 모신 사명각이 있다.

속성이 임씨인 사명당은 15세에 양친을 잃고 세상이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해 직지사에서 스님이 되고 묵화당에서 선을 받아 18세에 선과에 급제, 30세에 직지사 주지가 됐다. 너무 일찍 부모를 여읜 사명당은 가난과 삭막 속을 헤매다 황악산 직지사에 입적했다. 입적하기 위해 맑은 개울 물소리를 들으며 깜깜한 밤 10리를 걸은 끝에 직지사 만세교에 이르렀다. 백년송이 꽉 들어찬 숲 때문에 어둠이 더 깊었다. 어두운 밤, 직지사를 찾았지만 스님을 깨울 수가 없었다. 만세교 건너 우연히 따뜻한 잠자리를 얻었다. 버섯을 따다 모으는 곳으로 하루를 자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었다. 어린 사명에게는 세상을 떠난 어버이 같은 친근감이 있는 집이다. 하루를 세우고 흐르는 맑은 물에 얼굴과 손을 씻으니 새벽 도량석이 시작됐다.

직지사의 한 노승이 잠깐 조는 사이 꿈속에 직지사로 들어오는 길 큰 소나무 아래 누런 용 한 마리가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았다. 용은 현실은 아니나 현실 이상 사명을 맞이한 것이다.

그 후 사명은 큰 재목이 되어 임진란이 일어나자 서산대사 휘하에 들어가 고사시(소서행장)가 이끄는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승장 서산대사의 특사로 가토오의 진영에 들어가 왕자를 구하여온 맹장이다.

61세 때는 선조의 국서를 가지고 일본에 수신사로 건너가 대일 강화 조약을 맺고 포로로 잡혀간 3500명의 동포와 약탈해간 보물들을 회수하여 외교에 능함을 보여 주었다.

이에 선조께서 노고를 치하, 거의대부 벼슬과 어마를 하사하셨다. 광해군 때 67세로 입적하여 해인사 부도에 안치하고 그의 유물은 유언 따라 제자들이 해남 대흥사 표충사에 보관했다.

사명당 영정 안에서 나와 성보박물관으로 갔다. 1996년에 문을 연 성보박물관은 경내에 있던 청풍료를 개조하여 만들었는데, 직지사 유물뿐 아니라 관할 말사 유물들을 함께 모아 전시했다.

그중 한 천사에서 출토된 보물 1141호 금동자물쇠는 우리나라에 두 개뿐인 귀중한 유산으로, 여러 곳에 산재돼 있는 석탑 문비에 조각된 자물쇠의 본보기가 된다.

또한 선산 도리사에서 발견된 국보 208호 금동육각사리함은 작은 여섯 면에 불상을 새긴 신라의 공예술을 엿볼 수 있다.

보물 319호인 마멸이 심한 석조여래좌상이 부드러움을 간직한 채 통일 신라시대의 불상과 조각 솜씨가 뛰어난 목조보살상, 사자를 귀엽게 두 손으로 잡고 있는 목조 동자상, 절 집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관우나 조자룡으로 보이는 장수가 말 달리는 불화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 외 수십여종의 문화유산이 진열돼 직지사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듯하다

박물관에서 나오는데 "청춘을 불사르고"의 저자 일엽 스님이 이곳에서 출가를 했다는 생각이 났다. 양장 차림에 신식 핸드백을 들고 관웅 스님을 찾아 왔는데 그 스님이 잠깐 장을 보러 간 사이 일엽 스님을 어떻게 설득을 하였는지 장에서 돌아오니 관웅의 은사 스님이신 탄응 스님이 머리를 깎고 있더란다.

또한 직지사의 말사 화장암에 가면 벽면에 일본풍의 그림이 장식됐는데 수덕사에 있던 일엽 스님이 출가 전, 자제이신 일당의 그림이란다.

훗날 일엽의 아들인 일당이 탄옹 스님을 찾아와 스스로 그에게 계를 받고 출가를 하였다 한다. 그의 어머니와 아들 일동이 탄옹 스님에게 출가하여 두 분이 다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에 일엽 스님에게 탄옹 스님이 편지를 써서 금강산 마하연에 살던 희노장 비구니 스님에 보내 스님을 만들었다. 그 후 수덕사 만공 스님에게 다시 보내 견성암에서 우리나라 최초에 신식 여성 스님이 되었다. 후학을 가르치며 "청춘을 불사르고"를 집필하여 오다가 수덕사 견성암에서 열반하여 다비하였다.

일엽 스님이 수덕사의 신식 불교 건물 견성암에 계시던 생각을 하며 일주문으로 나오니 아침에 폈던 금낭화가 노을에 미소를 짓는다.

직지사 법당 안으로 들어가면 천불 부처님이 가득차 부처님의 세계인데 그중 고추를 내놓은 탄생불이 귀여운 모습으로 서 있다.

이 탄생불을 먼저 본 사람이 첫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에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자들이 줄을 지어 찾았다 한다.

직지사 역사 한눈에… 성보박물관

보물 1141호 금동자물쇠

국보 208호 금동육각사리함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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