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 문백전선 이상있다
295.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0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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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610>
글 리징 이 상 훈

"연춘, 이제 나와 이곳에서 멀리 떠나야하오"

"감사하옵니다. 어르신! 하늘 같은 이 은혜를 이 몸은 죽어서도 잊지 않겠사옵니다!"

교천은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는 서리를 향해 큰절을 넙죽 올렸다. 곧이어 서리의 부하들이 다른 감방에 갇혀있던 연춘 처녀를 데리고 왔다.

조금 피곤한 듯 보이는 연춘 처녀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교천)가 바로 앞에 있음인지 수줍은 척 고개를 살짝 돌려 외면하고 있었지만 자기 딴엔 예쁘게 보이고자 알게 모르게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역력해 보였다.

서리는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촌티가 줄줄 흘러내리는 것만 같은 연춘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한숨을 몰아내 쉬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도대체 저 여자 어디 어느 구석이 예뻐서 흑성산 산적 두목의 아들 교천은 저렇게 자기 목숨까지 내걸 정도로 사랑을 하는 걸까

어렸을 적 천연두 마마를 조금 앓다가 나았는지 살짝 얽은 얼굴에다가 감았는지 떴는지조차 쉽게 구별이 안 될 정도로 가늘고 긴 두 눈, 축 쳐진 두 볼에다가 두툼한 입술, 게다가 뻥 뚫린 들창코에 전체적으로 오종종하게 생겨먹은 얼굴형, 어디까지 허리이고 엉덩이인지 구별이 잘 안 갈만큼 절구통처럼 굵은 허리.

이렇게 멋대가리 없이 생긴 여자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남자의 성욕(性慾)이 땅겨지기는커녕 기껏 세워놓은 남자의 그것이 바짝 오그라들까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떠랴.

이런 두루뭉숭이 처럼 생겨먹은 여자를 죽자고 좋아하는 사나이가 지금 여기 있으니.

"연춘! 이제 나랑 이곳에서 멀리 떠나야하오. 자, 어서 서두르지요."

교천은 그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되는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켜가며 점잖게 말했다. 그러나 연춘은 갑자기 몸을 홱 돌리더니 내뱉듯이 이렇게 답해주었다.

"저는 못 가옵니다. 절대로! 제가 어찌 아버님 어머님의 허락도 받지 아니하고 외간 남자와 낯선 길을 함께 떠납니까"

"연춘! 지금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때가 아니오. 급하오! 자 어서 나랑 떠납시다. 지금 우리가 서두르지 않으면 죽게 될지도 몰라요."

"흥! 죽어도 전 좋사옵니다. 부모님의 허락도 받지 아니한 처녀가 어찌 맘대로 몸을 놀릴 수 있나요 죽으면 죽었지, 저는 여기서 단 한 발짝도 뗄 수가 없다고요

"연춘! 제발 그 고집을 꺾고 내 말을 들어주오! 부탁하오!"

"어머머! 이 손 놓으세요! 자꾸 그러시면 전 너무 부끄러워서라도 제 혀를 콱 깨물고 자살할지도 몰라요!"

연춘 처녀는 은근히 겁주듯 이렇게 말하면서 교천의 잡은 손을 거칠게 뿌리쳐 버렸다.

"어허! 이걸 어쩐다"

교천은 너무도 답답한 듯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허공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 그보다 더욱더 답답한 사람은 서리였다.

'아니, 세상에 꼴값을 해도 어느 정도가 있고 분수가 있는 법이지, 저런 막 되먹은 형편없는 쪽을 가진 주제에 뭔 배짱으로 저렇게 뻐겨 예쁜 여자가 뻐기는 꼴을 어디서 본 것은 좀 있어가지고. 그러나 사실 저 교천이란 놈 역시 인물만을 놓고 따져 본다면 지극히 별 볼일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서리는 지지리 못난 주제에 계속 꼴값을 떨고 있는 이 청춘 남녀를 어서 빨리 내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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