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
원산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26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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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 경 훈 <경제부장>

'잘 먹지 못하며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프랑스 사람들은 세계적인 미식가다.

식사를 하나의 축제, 예술로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의 요리는 일찍부터 세계의 요리로 부상하였다. 지구촌의 내로라하는 미식가(美食家)들이 몰려드는 프랑스. 음식 문화에 대한 국가적 자존심이 대단한 나라다. 세계 '외식(外食) 문화의 1번지'라는 명성은 어느 나라도 감히 침범치 못한다. 프랑스 음식은 세계인의 입맛을 결정하는 브랜드가 된지 오래다. 이러한 명예를 지키려는 프랑스인의 노력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음식의 주재료인 쇠고기에 대한 자부심은 우리의 한우 사랑에 버금간다. 프랑스도 지난 96년 영국의 광우병 파동으로 심한 홍역을 치렀다. 쇠고기 소비가 절반 이상 줄어드는 등 큰 충격에 빠졌다. 당황한 프랑스 정부는 검역 강화와 더불어 안전한 쇠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묘안을 짜냈다. 그 결실이 '프랑스산 쇠고기(Viande Bovine Franciase)의 라벨화' 제도다. 골자는 소의 태생, 발육, 도축의 세단계가 자국내에서 이뤄질 때만 프랑스산 쇠고기로 인정하는 것이다. 캐나다산 소가 미국으로 건너가 3개월만 키워도 국적이 바뀌는 아메리카와는 다르다. 라벨에는 소의 출생지, 출생일, 소의 종류 등을 낱낱이 표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백화점 등에서 추진하는 쇠고기 이력제와 흡사하다. 이런 노력으로 그동안 등을 돌렸던 프랑스 국민이 자국산 쇠고기를 다시 식탁에 올린 것은 당연하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다음달 1일부터 쇠고기 원료 음식에 대한 원산지 표시 의무화 방안을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음식점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구이와 탕 등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됐던 원산지 표시 규정이 국, 반찬 등을 포함한 모든 쇠고기 원료 음식으로 확대된다.

표시방법은 국내산 쇠고기는 원산지와 식육 종류를, 수입산은 수입 국가명을 메뉴판, 푯말, 게시판 등에 소비자가 잘 알아보게 기재해야 한다. 먹을거리에 대한 선택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방침에 대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표시제 확대로 충북도의 원산지 표시제 대상업소가 기존 87개소에서 일반음식점 2만1000개, 휴게음식점 500개, 위탁 및 집단급식소 1600개 등 무려 2만3000여개소로 대폭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들 업소를 지도점검 단속해야 할 인력은 충북도와 시·군의 위생담당 공무원 60여명과 농산물품질관리원 충북지원 소속 특별사법경찰관 71명 등 130여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런 단속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2만5000명의 원산지 시민감시단을 발족하고 위반사실을 신고하는 소비자에게 최고 2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신고포상제도가 활성화되도록 신고사이트를 운영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직접 현장에서 음식을 보고 원산지를 식별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소비자가 흔치 않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외식할 때마다 꺼림칙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수입산 식품이 범람하면서부터다. 식당에서 출신성분도 모른채 주인이 내주는 대로 먹었다. 믿었던 단골 맛집에서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 이젠 사 먹는 쇠고기와 쌀이 어느 나라 것인지는 알게됐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원산지 둔갑·출처불명의 식품이 금방 사라지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정부의 원산지 단속 방침은 현재의 상태에서 일단 실효성을 잃었다. 누가 봐도 이해할수 있고 실천 가능한 원산지 표시에 대한 방안이 하루속히 나와야 한다. 촛불은 이런 것들이 담보되기 전에는 아마도 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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