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목의 이웃들
그 길목의 이웃들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4.05.1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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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깜빡 옆길을 지나쳤다.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옆길로 발을 돌렸어야 하는 것을 잊은 것이었다.

그 순간 돌아갈까 망설이다가 이왕지사 가던 길을 가기로 했다.

한석이가 이러는 까닭은 얼마전 길을 가다가 건너편에서 누군가 한석을 쏘아보고 있는 것 같아 켕기는 그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 보는 순간 멍영감이 한석을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한석은 그가 왜 그러는지 알 것도 같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가려는데 옆을 지나칠 무렵 그의 입에서 귀에 거슬리는 말이 작은 소리로 한석을 향하고 있었다.

한석은 불쾌했지만 못들은 척 지나쳐 버렸다.

언젠가 우연히 그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는 한석에게 간곡히 그의 식당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지만 한석은 그 곳을 가지 못했다. 어쩌면 그의 작은 분노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 길목에 들어서면 눈에 걸리는 껄끄러운 집들이 둘 있었다.

이들은 한석의 집으로 통하는 동네 먹자길 끄트머리 부근에 양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식당들이었다. 한석은 이 길을 통과하면 곧장 집으로 갈 수 있는 길이지만 마주치지 않으려고 비록 거리는 멀어도 돌아서서 가는 길을 택하곤 하였다.

그 날 따라 한석은 문을 닫았을 시간이라 생각하고 부담없는 마음으로 그 길목에 들어섰다. 예상대로 간판에 외등이 꺼져 있었다.

첫째 관문의 식당 주인은 멍영감이었다.

그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그가 말을 할 때마다 맨 앞에 개자 소리를 강한 어조로 힘주어 입에 달고 떠들었다. 더구나 그의 성과 이름을 모르니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얻은 그의 별명이었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한석은 그 집 앞을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그의 얼굴이 나타났다. 깜짝 놀란 한석은 당황했지만 그는 의의로 말이 없었다.

그가 욕이라도 퍼붓던지 멱살이라도 잡을 줄 알았는데 그는 헛기침만 날리고 냉담하게 돌아갔다. 왠지 미움에 대한 단절이 아쉬움으로 맴돌았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연유라도 있는 걸까 있다면 단지 한석이가 예전에 자주 가던 그 집을 들리지 않게 된 것 뿐이었다.

아마도 멍영감 생각으로는 한석에 대한 단골의 연민과 정이 있는데 그것을 저버렸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과연 그것이 한석이가 피해야 될 일인지 의문스러웠다.

다음은 달그락 아재였다. 그는 아는 체하며 따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한석과 그 사람은 툭하면 달그락거리며 부딪쳤다. 그의 이름도 그렇게 붙여졌다.

그 집도 불이 꺼져 있었다. 이 야심한 시간에 누굴 만날 것 같지 않아 거침없이 그 집 앞을 걷다가 골목에서 갑자기 나지막한 목소리로 검은 그림자가 말을 걸어왔다. 설마 했던 그였다.

그는 한석에게 요즘 통 보이지 않는다며 서운함을 따지듯이 이것저것 물었다.

짜증난 한석은 급한 용무를 핑계로 그곳을 벗어났다. 한석은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딱히 실수한 일도 없는데 그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동네 이웃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면 한석에게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웃이라는 존재를 쉽게 간과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어찌보면 이 같은 그들의 치열한 삶이 한석에게 서운함으로 표현되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누구에겐 사소함이 누구에겐 심각성을 갖고 있었다. 그 길목의 끝을 빠져 나온 한석은 공연한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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