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주름을 펴면 어떻게 될까
마음 주름을 펴면 어떻게 될까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4.05.1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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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나이가 들면 쭈글쭈글해진다. 팽팽하던 피부도 탄력을 잃고 주름이 생긴다. 이마와 입가, 눈가,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손도 쭈글쭈글해진다. 세월은 불가역적이라 한 번 생긴 주름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온갖 크림을 발라대도 결국에는 쭈그렁바가지가 된다.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주름이 생긴다. 마음의 주름은 선입견, 고정관념, 고집, 폐쇄적인 태도, 완고함의 형태로 표출된다. 부드러움이 사라지고 딱딱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린 아이의 피부는 뽀얗고 탱탱하여 어느 곳 하나 접힌 곳이 없다. 쿡 찌르면 `탱!'하고 튀어 오른다. 아이들은 피부에 주름이 없는 것처럼 마음에도 주름이 없다. 배고프면 먹고 기분 좋으면 웃고, 불편하면 울고, 편안하면 논다.

외부세계에 대한 선입견도 없는 편이다. 주삿바늘을 찌르려 하면 `뭐지?'하면서 그저 쳐다본다. 주사에 찔리고 나서도 1~2초쯤 지나 통증이 밀려오면 그제야 운다. 찌른 사람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도 없다. 왜 아픈지, 누구 때문에 이런 통증을 겪는지에 대한 생각 자체가 아예 생기지 않은 것이다. 아픔은 있지만 외부세계에 대한 원망은 아직 없다. 원망이라는 마음의 주름이 아직 잡히지 않은 것이다.

마음에 주름이 잡힌다는 건 A4용지와 같은 편편한 평면에 굴곡이 생기는 것과 같다. 펼쳐진 A4 용지에 모래를 뿌리면 전체에 골고루 흩어진다. 마음에 주름이 잡히면 펼쳐진 A4 용지가 둥글게 말린다. 둥글게 말린 A4 용지에 모래를 뿌리면 둥글게 말린 밑바닥으로 모래가 몰리게 된다.

어린애가 주삿바늘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건 그에 대한 선입견이 없기 때문이다. 곧 마음에 그에 대한 주름이 잡히지 않은 것이다. 한두 번 찔리면 주사는 고통을 가져온다는 걸 안다. 주사=고통이라는 등식이 머리에 새겨져 주사 맞으러 가자면 울기 시작한다. 주사에 대한 마음의 주름이 잡혀 골이 생긴 것이다.

마음에 골이 생기면 모든 정보가 한 곳에 몰리게 된다. 곧 유사한 모든 정보를 새롭게 생긴 기준에 맞춰 판단하게 된다. 주삿바늘이 뾰족하기 때문에 날카로운 물건에 대한 경계가 생기기 시작하고 주사 맞은 장소인 병원에도 가기 싫어한다. 주사를 놓은 의사나 간호사에 대한 원망도 생기기 시작하여 싫어한다.

마음에 주름이 잡히면, 곧 마음에 골이 생기면 그 방향으로 계속 접혀 파이프라인을 만든다. 그러면 어떤 정보가 들어오든 특정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예를 들어 춤에 미친 사람이 귀에 음악이 들려 자신도 모르게 몸을 흔들어 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춤바람이 나면 아이고 배우자고 다 내팽개치게 된다.

또한 개 눈에는 개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개라는 정보처리 장치로 특화되면 당연히 사람 눈으로 보지 못하며, 부처는 개의 시각으로 정보처리를 하지 않는다. 개 눈에 똥만 보이듯이 기업하는 사람 눈에는 돈만 보이고, 정치하는 놈들 눈에는 표만 보이며, 단죄하는 놈들 눈에는 범죄자들만 보인다.

주름 잡히지 않은 마음은 유연하다. 무엇이든 다 새길 수 있으며,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다. 마음의 이런 특성을 가소성(可塑性·plasticity)이라고 한다. 가소성이 높은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뭔가를 하고 싶다면 마음의 주름을 펴야 한다. 주름 잡힌 마음에는 새로움이 들어서 가능성이 거의 없다. 대화점유율이 4, 50% 정도 되는 사람은 고쳐볼 수 있지만 60분 동안 59분을 혼자 떠드는 놈은 치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마음에 주름이 심하게 잡히면 죽어서 내생에 태어날 때도 그 주름이 남아 있어서 악처에 떨어진다. 마음에 주름이 전혀 없는 아이와 같은 상태가 되면 자기가 원하는 모든 곳에 태어날 수 있다. 원하지 않으면 안 태어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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