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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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4.12.0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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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요즘 허공으로 흩어지는 내 무수한 언어들을 보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 누군가에게 내 말이 아픔으로 저물지 않기를 바라며 내 언어의 결을 좀 더 부드럽게 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말을 많이 하고 돌아온 날이면 특히나 그렇다. 

악의나 고의는 없었지만 혹시 나로 인해 가슴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없기를.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그 사람에게 미안하게 느끼는 것이 나만의 생각이길 바란다.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낼 수 있는 말에 나만 미안함을 가지게 된 것이길 정말 바란다. 친구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너무 예민해서 느끼는 나만의 반성이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오만상을 쓰며 불을 켠다. 오늘은 세곳을 이동하며 연수를 받는 날이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알람시계의 버튼을 누른다. 첫번째 연수 장소는 숲이다. 거기까지는 세시간이 족히 걸린다. 가는 동안 차안에서 덮을 담요를 챙긴다. 숲에 올라 갈 때 신을 운동화와 우비를 가방에 아무렇게나 꾸겨 넣는다. 가방은 짐의 크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반쯤 열린 지퍼 밖으로 담요조각을 뱉어놓고 있다. 어둠의 입자 가득한 새벽을 지나 아침을 맞으며 숲 근처에 도착한다. 

제법 비는 야멸차게 땅위로 떨어진다. 초겨울 찬비를 맞으며 숲을 걷는다. 아직 지지 못한 나뭇잎들이 빗속에서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다. 그 사이로 바람이 소리 없이 스치며 낙엽들을 날리고 있다. 비에 젖는 숲을 보며 알싸한 바람을 느끼고 있는데 한참을 골똘히 나뭇가지를 쳐다보던 아이가 청아한 목소리로 말한다. “선생님, 빗물 열매가 나뭇가지에 열려있어요.” 빗물이 가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한 말이다. ‘아~ 빗물 열매구나!’ 아이는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신선한 언어로 담아내고 있다. 빗물 열매라는 단어를 말하려고 한참을 나뭇가지에서 눈을 떼지 못한 듯하다. 투명하고 깨끗한 방울꽃에 가슴이 뻐근해 진다. 빗물열매가 땅으로 내려온다. 빗물에 젖은 낙엽들은 바삭한 느낌이 사라지고 푹신하고 포근한 느낌이 되어 신발을 타고 온몸으로 젖어든다. 

숲을 느끼고 돌아오는 길, 뒷좌석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에 대해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풍화되지 않는 그 시간들에 대해 조곤조곤 풀어 놓는다. 아뿔싸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싶다. 차창에 줄줄 흐르는 빗물을 본다. 그런 기억쯤 쿨하게 흘려보내지 못하는 내가 참 덜떨어지게 느껴진다. 흐르는 빗물 속에 다 녹여 심연 속으로 가라앉힐 때도 되었는데 참 못났다는 생각을 한다. 

연수 장소를 옮겨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결과물을 심의하는 자리이다. 난 느낌을 걸러지지 않은 언어로 말하고 말았다. 그 결과물을 만드는 동안 소모했을 시간들과 노력들을 너무 간과한 평가였다. 좀 더 정돈된 언어로 부드럽게 말했어야 했다. 마모되지 않는 단어들이 그 사람들을 아프게 했을까봐 걱정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들로 편하지 않다. 밤늦도록 잠에 못 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이유는 듣기는 많이 하고 말은 적게 하라는 데 있다.’라는 그리스 철학자 제노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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