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니 풀리테'를 위하여
한국의 '마니 풀리테'를 위하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1.13 2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 청 논 단
강 태 재 <충북시민사회연대회의 상임대표>

어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진술한 삼성그룹으로부터 금품로비를 받은 검사 3명을 공개했다.

사제단이 공개한 3명은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전 서울중앙지검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전 서울중앙지검장),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으로 검찰의 전·현직 핵심들이다. 1000여개의 차명계좌에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여 검찰에 제공된 떡값으로만 해마다 10억원이 넘는다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삼성그룹 법무팀장으로서 직접 법조계 관리를 관장했던 담당자가 고발을 했는데도 "떡값 검사 리스트를 주지 않으면 수사할 수 없다"고 뭉개버리는 검찰의 태도를 알 수 있겠다. 지난 2005년의 X파일 사건 때도 고발자만 기소당한 황당한 일이 왜, 벌어졌는지 알겠다.

그런데, 문제는 검찰만 그런 것이 아니란 점이다. 이번에 공개된 내부문건을 보면, 현직 청장이 구속 수감된 국세청 또한 삼성의 불법 차명거래를 사실상 묵인, 방조했다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비상장 회사를 통한 각종 주식거래에 임원들의 차명거래가 사용됐고, 이 같은 차명거래를 국세청은 거의 다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삼성의 불법 거래를 사실상 묵인 방조해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차명거래로 국세청이 삼성의 관리대상이었음을 확인하게 됐고, 개인이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거래를 삼성 구조본에서 조직적으로 진행했으며, 그동안 검찰을 비롯해 국세청과 재정경제부 등 힘 있는 경제부처를 관리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일개 기업의 불법 로비와 타락한 권력층 일각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이미 도를 넘어선 총체적 부패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제단은 삼성 비자금 문제를 검찰의 뇌물수수 사건으로 몰고 가려는 것을 경계하면서 뇌물명단을 특정개인으로 보지 말고 재물에 길들여진 국가기관의 상징 정도로 여기고, 우선은 검은 돈을 흉하게 탕진하고 있는 삼성그룹 최고 경영진의 악행을 나무라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렇다. 사건의 본질은 재벌세습과 금융권력 획득을 향해가는 삼성의 야욕이다.

삼성의 전방위 로비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목표를 꿰뚫어 봐야 한다. 지난 1999년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사채 발행이나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등은 모두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재산을 증식시키고 삼성의 지배권을 승계하기 위한 작업이다. 탈법과 허위, 배임, 증거인멸로 일관된 이들 작업의 결과는 이재용 전무가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가 되어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세습체제이후의 목표는 금산분리의 폐지다. 금산분리가 유지되는 한, 삼성은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로 분리되어야 하는데, 막대한 순익을 안겨다주는 삼성전자 등 비금융 분야나, 자산 규모로 이미 그룹 전체 자산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금융 분야나 삼성으로서는 모두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와 같은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검찰 수뇌부가 도덕성과 독립성을 의혹받고 있는 상황에서, 뜻 있고 소신 있는 검사들이 목소리를 내야한다. 일부 부도덕한 검찰 수뇌부가 떨어뜨린 검찰의 명예는 뜻 있고 소신 있는 검사들의 적극적인 수사만으로 회복될 수 있다. 한국의 '마니 풀리테'를 위하여 다시 한 번 촛불을 들어야 할까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