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상식 (주) 엘알 대표이사
함상식 (주) 엘알 대표이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24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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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처절한 내핍 잊지 않고 자수성가 후엔 직원에 '청지기'로

갑작스런 퇴직이 되레 삶의 전환점

잊을 수 없는 '100원 호떡'의 추억

함상식 사장의 첫 인상은 밝고 편안함이었다. 산전 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으며 성공한 CEO의 묵직한 중
량감보다도 가세좋은 집안의 장자같은 넉넉한 품성부터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미남형이지만 조금만 더 젊었다면 뭇 여성의 속깨나 썩였을 법한 그런 좋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런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함 사장의 과거를 현재에서 유추해 내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5남 1녀 흥부네 가족의 차남으로 태어난 함 사장의 어린 시절은 한마디로 불우했다. 그 시절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지만, 땅 한 뙈기 없는 집안의 숙명은 처절한 궁핍이었다. 너무 먹을 것이 없어 설날에 보리죽으로 때웠으니 말이다. 이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옆집의 눈부신() 부(富)였다. 한집은 유선 방송을 하는 라디오 가게였고, 또 한 집은 방앗간이었는데, 모두 머슴을 두고 살았다. 이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지금도 당시의 기억이 뚜렷이 각인돼 있다. "나는 언제나 저렇게 살까"의 상대적 박탈감이 어린 시절 내내 함 사장을 떠나지 않았다.

이런 내핍을 경험해서인지 성공한 지금도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인색하다. 2년 전 아들 결혼식 때는 단 15명에만 초청장을 보냈다. 식장을 채운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스스로 찾아온 사람들 뿐이었다. 물론 혼수와 폐백도 일체 안 했다.

함상식 사장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헷갈리는 광경에 잠시 어리둥절해 한다. 사장실 입구에 떡 버티고 있는 골프연습장 때문이다. 성공한 기업인들의 방이나 사무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자그마한 시설이 아니다. 시중의 연습장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이곳 연습장의 단골은 함 사장이 아니고 직원들이다. 관리직은 물론 생산직까지 틈만 나면 이곳에서 연습도 하고 레슨도 받는다. 함 사장이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며 설치해 준 것이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사장 앞에서 직원들이 부담없이 골프채를 휘두르는 이런 광경이 엠 알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 주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엠 알은 창업 이후 지금까지 월급은 물론 보너스를 한번도 밀린적이 없다고 한다. 직원들에 대한 해외연수 및 유럽여행은 이 회사에선 기본사양()이다. 지난해에는 주식의 20%를 우리사주로 전환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곳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평생직장의 신념을 더욱 곧추세울 수밖에 없다. 요즘 함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중에 하나는 '청지기'다. 지금 이를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창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업계에서 인정하는 기술력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요.

△ 청주대를 나온 1년 후쯤인 76년 7월 효성그룹 계열인 대전피혁에 입사해 자금담당으로 일하게 됐다. 여기서 5년 동안 일하다가 같은 계열의 자동차 부품회사로 옮겼다.

그런데 이 회사가 형제간 경영다툼에 휘말리면서 내가 심정적으로 지지했던 쪽이 물러나게 됐고, 나도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왔다. 실질적인 해고인 셈이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용기를 내 창업하기로 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86년 엠 알 트레이딩이라는 법인을 설립, 자동차 부품의 무역업을 시작했다. 자동차 부품은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다뤘던 경험이 있어 시작한 것인데 나름대로 성공한 것이다.

95년 100만불 수출탑 수상에 이어 아예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믿음을 갖고 또 신뢰로 무장해 사업을 했더니 기회가 오더라. 97년 IMF 사태는 환율급등 때문에 우리 같은 수출업자들에겐 되레 호기였다. 돈이 불어났고, 지금까지 탄탄한 경영을 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우리 회사는 특수정밀분야인 파인블랭킹(FINE BLANKING)에서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는다. 현재 300여가지의 자동차 부품을 취급하는데 지금까지 매출이나 자금은 고민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자신있다.

-회사 이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무슨 특별한 의미라도 있습니까.

△ 그렇다. 내가 직장을 나와 처음 무역업을 시작할 때 자기일처럼 도와준 사람들이 있다. 전에 직장 때부터 거래하던 사람들인데 내가 창업한다니까 "너는 믿을 수 있다. 같이 하자"면서 그야말로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왔다. 미국인 Mr. Morse씨와 Mr. Romanow씨다. 이들의 이니셜을 따 엠 알로 정했다. 오는 9월 10일 바뀌는 회사명도 엠 알로 시작된다. 이렇게라도 의리를 지키고 싶다.

-장학금으로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면 할 말도 많으실텐데, 그 때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요.

△ 청안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집에 돈이 없어 중학교에 진학할 처지가 못 됐다. 이 때 담임선생이 주선하고 청안중 교감께서 보증을 해줘 충북도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 진학할 수 있었다.

중학교 3년 내내 장학생으로 다녔고, 이후 옛 청주상고와 청주대에서도 장학혜택을 받았다. 물론 생활비는 나름대로 벌었다. 학교는 다르지만 친구 장한량이와 신문배달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아마 지금 기억에 100원에 두개씩 하던 호떡을 사 먹을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같다. 그런데 나한테는 꼭 하나를 더 얹어 3개씩을 주더라. 내가 그렇게 안 돼 보였기 때문일게다.

한량이 친구 참 머리도 있고 실력도 좋은데 정치하면서 잘 안풀리는 것같아 안타깝다. 임정빈(전 로제화장품 사장), 홍관희(전 국정원), 경청호(현대백화점 사장), 정해득(㈜재원 대표) 친구들은 언제봐도 반갑다. 초·중·고, 대학을 모두 고향에서 나오다보니 가끔 청주나 청안에 내려와 동창들을 만난다.

-평소의 생활이나 사업에 무슨 특별한 신념이라도 있는지요. 지인들의 얘기를 빌리자면 큰 사업을 하는 사람치고는 너무 조용하다는 평가도 있는데….

△ 그저 열심히 일한 것 뿐이지 나한텐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기업을 하면서 체득한 것은 세상 삶이 억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 때가 있고 기회와 계기가 있다고 본다. 나는 이에 대해 내 삶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진다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내가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못할 상황에서 장학금 혜택이 주어진 것이나. 직장 생활하다가 본의 아니게 퇴직해 사업을 시작한 것 등은 결코 계획되거나 의도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길을 걸었고, 오늘까지 오게 됐다. 크리스천의 입장에선 이 보이지 않는 손을 하느님이라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면 운명이 알아서 해준다는 신념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조급해 하거나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편하게 생각하고 편하게 살려고 한다.

◈ 함상식 사장은

1952년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가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청안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집안이 너무 어려워 중학교 진학조차 못할 상황이었다. 이 때 주변의 주선으로 당시 시행되던 도비 장학금을 받아 중학교에 진학, 이후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장학금 반, 고학 반으로 힘겹게 마쳤다.

1975년 청주대 경제과를 나와 1년 후 효성그룹 계열사에 취직하면서 본격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급쟁이를 10년만에 정리하고 1986년 스스로 엠알트레이딩이라는 법인으로 창업해 자동차 부품의 무역업에 나선다. 승승장구를 거듭하다가 1995년 제조에까지 뛰어들어 현재 국내 최고의 자동차 부품 회사로 성장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인천 남동공단(인천시 남동구 고잔동)에 위치한 회사는 130여명의 직원에 연매출 3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 기아, 쌍용, GM대우는 물론 포드, GM 등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들이 주요 고객들이다. 오는 9월 10일 창립 21주년을 맞아 회사명을 '엠알 인프라 오토'로 변경하고 제 2창업을 선언한다. 지금까지 축적한 모든 것을 결집해 세계적 기업으로 재도약하기 위함이다. 이미 경영수업을 엄하게 시키고 있는 2세에겐 직원 1000명 이상의 대기업을 만들 것을 지시한 상태다.

카이스트를 나온 아들 도헌씨(28)는 현재 생산팀을 맡아 바닥부터 경영을 배우고 있으며, 쇠를 다루는 아버지의 기를 이어 받은 딸 윤진씨(23)는 한양공대 대학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중이다. 함 사장은 본인의 궁극적 성공을 두 자녀의 미래에 두면서 남다른 긍지를 드러내고 있다. 부인 권경선씨는 청안 초등하교 2년 후배로, 대학 2학년 때 만나 8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 CEO 개론(槪論)

1.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실수로 수천만원의 손실을 입혀도 문책하지 않는다. 이를 문제삼으면 앞으로는 그런 실수를 숨기게 된다. 그러면 조직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 몇배 이상의 누수로 안에서부터 좀먹게 된다.

2. 돈과 관련된 결재는 담당자를 믿는 대신 리더로서 거시적 안목의 투자결정에만 전력한다. 리더가 돈과 관련해 너무 세세한 것까지 간섭하면 그 조직은 한발짝도 못 나간다. 수십억원짜리 기계구입을 담당직원에게 전담시켰더니 오히려 구입단가가 경쟁회사의 경우보다 훨씬 낮았다. 이런 것이 조직의 궁극적 경쟁력이다.

3. 사업과 삶은 부메랑과도 같다. 신세진 사람한테는 반드시 갚아라. 어차피 기업은 주변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다. 진정한 CEO는 성공한 후에 자신을 돌봐 준 사람들을 절대 잊지 않는다. 안 그러면 늘그막에 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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