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남지 않은 여름방학
얼마 남지 않은 여름방학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2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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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큰 오이를 3∼4개 따서 까맣게 돋은 작은 가시들을 손으로 쓱쓱 문질러 된장에 '쿡∼' 찔러 한 입 베어 뭅니다. 그렇게 물 말은 점심밥을 오이와 먹고 한숨 늘어지게 낮잠을 자지요.

얼마를 자다 부스스 잠이 깬 덕배는 은근한 걱정이 한숨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로 밀린 방학숙제 때문이죠.

방학 며칠은 계획표대로 일기며 독후감 숙제를 척척 했지만, 오늘 보니 일기는 열흘이나 밀렸고 산수 숙제 또한 반도 못한 상태였죠. 선생님의 화난 목소리와 무서운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잔털이 오소소 돋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선지 오늘따라 매미소리가 여름 햇볕보다 더 따갑게 귀를 울렸죠. 그 때입니다.

"아하! 바로 그거야."

덕배는 무언가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 지난해에 배웠던 헌책 한 권과 뒤꼍으로 가 굴뚝 옆에 세워 둔 잠자리채를 가지고 뒷산으로 향합니다. 아마도 덕배는 방학숙제인 식물채집이나 곤충채집을 하려는 모양입니다.

덕배가 막 집을 나서 돌담을 돌아설 때였습니다.

노오란 등잔불을 켠 듯 한 호박꽃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있었습니다.

가을도 아닌데 꼬리가 빠알간 고추잠자리를 발견한 덕배는 신이 났고, 문득 어릴 적 생각에 터져는 웃음을 간신히 참습니다.

덕배가 어릴 적에 처음 고추잠자리가 장독에 앉은 것을 보고, "할머니 쟤가 우리 고추장 몰래 훔쳐 먹었어. 저 꼬리 좀 봐." 말했던 것이었죠.

덕배는 호박꽃 잠자리 곁으로 살금살금 걸어가 잠자리 머리 앞에 검지손가락을 가만히 대고 슬슬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잠자리는 아예 손가락의 따라 뱅글뱅글 고갯짓을 하고 덕배는 이때다 싶어 손으로 '홱'하고 고추잠자리를 낚아챕니다.

손가락 사이에 잠자리를 끼우자 고추잠자리는 그제 정신이 드는지 연시 빠알간 꼬리를 오므렸다 폈다 야단입니다.

여름 숲속으로 향하는 덕배의 마음은 벌써 곤충채집과 식물채집을 한 것 같아 덕배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어 젖힙니다. 숲속의 산새들도 덩달아 "삐쫑∼ 삐쫑∼" 거리고 덜 여문 도토리를 물고 가던 다람쥐 한 마리는 놀랬는지 입에 물었던 도토리를 떨어뜨려 풀밭으로 대굴대굴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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