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막 내린 '코리안 드림'
죽음으로 막 내린 '코리안 드림'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7.08.20 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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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폭행으로 숨진 '베트남 신부' 후인 마이씨 추모행사
27년 연상의 한국인을 신랑으로 맞아 국내에 시집온 열 아홉살의 앳된 베트남 신부가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채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본보 7월31일자, 8월7일자 3면 보도>

폭염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 19일 오후 4시 천안역 광장. 지난 6월26일 남편 장모씨(46)로부터 갈비뼈가 18개나 부러지는 폭행을 당해 숨진 후인 마이씨(Huynh Mai·19)의 추모행사가 열렸다.

주최측이 죽기 하루 전날 후인씨가 남편에게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가자 추도식에 참석한 100여명의 사람들이 눈가에 물기를 훔쳐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열 아홉 꽃다운 나이에 무참하게 생을 마감한 후인씨의 편지는 너무나 애절했다.

건설 일용근로자인 이혼남 장모씨(46·구속)와 결혼한 그녀는 지난 5월16일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린 것은 장밋빛 결혼생활이 아닌 천안시 문화동의 월 18만원짜리 지하월셋방의 지옥같은 감금생활이었다. 한국에서의 달콤한 신혼생활을 얘기하며 그녀를 데려왔던 남편은 베트남 신부에게 바깥 출입조차 허용하지않고 한국어학원을 다니고 싶다는 말도 묵살했다.

하루하루를 막노동으로 벌어 생활하는 남편의 힘든 실상을 알게된 그녀에게 경제적인 문제는 이혼요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냥 소통을 하고 싶은 것이 그녀의 전부였다. 그러나 남편은 후인씨의 자유까지 구속하며 소통을 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다.

편지에서 "남편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남편에게 잘해 주고 싶다.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호소했던 그녀는 결국 남편에게 이혼과 베트남으로의 귀국 허락을 요청했다.

그러다 지난 6월26일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에 격분한 남편은 후인의 여권을 찢어버리고 주먹과 발길질로 무자비한 폭행을 가해 그녀를 숨지게 했다.

죽은지 8일만에 발견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심하게 부패된 그녀의 시체는 부검결과 24개의 갈비뼈 가운데 18개가 부러져 있었다. 지난 5일 대전에서 검거된 장씨는 경찰에서 "돈 들여 아내를 데려왔는데 자꾸 돌아간다고 해 홧김에 때렸다"고 진술했다.

그녀가 죽기 전날 쓴 편지가 인권단체에 의해 인터넷에 공개되자 관련 사이트마다 네티즌들의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한 네티즌은 "첫번째 늑골이 하나 부러져 나갔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 늑골이 열 다섯번째 부러져 나갔을 때… 아픔과 고통은 죽음과 함께 사그라지고, 열 여섯 번째 부러져 나갔을 때… 매일 매일 그리운 어머니와 고향생각에, 마지막 열 여덟번째가 부러졌을 때… 다음 생에는 좋은 남자 만나 아이 낳고 행복히 사시길 바랄께요"라며 그녀의 고통을 슬퍼했다.

그녀는 편지 말미에 남편 장씨에게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당신을 용서하겠다"는 말을 남겨 더욱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날 천안·아산지역 90여개 인권 관련 단체로 구성된 베트남 여성 후인마이(Huynh Mai) 사망사건 후속 공동대책위원회가 마련한 추모행사는 시종 고인의 명복을 비는 애절한 분위기속에 진행됐다. 후인을 위해 종이로 만든 돈과 집, 자전거를 불태우는 베트남 전통의식의 영결식도 함께 치러졌다.

김기수 천안이주노동자지원센터 사무국장은 "그녀가 한국인 남편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만 있었어도 이런 불행한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후인씨가 죽기 하루 전에 작성한 편지를 서랍 속에 넣어 둬 남편이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날 대책위는 국제결혼중개업체 관련법안 마련과 지자체의 농어민 국제결혼비용지원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1시간여만에 행사를 끝냈다.

천안시 모이세 이주여성의 집 여경순 소장은 "후인씨의 죽음은 외국인 이주여성이 가족과 사회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진정한 다문화 정책 마련 등 제도적인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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