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00명 지갑 열었다
하루 1500명 지갑 열었다
  • 고영진 기자
  • 승인 2007.07.23 2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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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눈에 띄는 '하이닉스 효과'
   
희뿌연 연기가 자욱한 식당안으로 들어섰다.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나마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은 맨 안쪽 자리를 내줬다. 손님으로 가득찬 30여 테이블에서는 보기 좋게 익어가는 삼겹살을 앞에 두고 사람들이 연신 소주잔을 기울이며 세상 얘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동태찌개와 밥을 시켜놓고 반주를 곁들인 식사가 한참이었다. 검은색 반소매티셔츠 위에 카키색 등산용 조끼를 입은 남자의 어깨 위에는 허연 소금자국이 보였다. 땀으로 얼룩진 모습이다.

모든 테이블이 손님으로 가득한 이 식당에는 대부분 이 남자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검게 그을린 피부며 거칠어 보이는 손, 하루의 피곤함이 노곤하게 배어든 지친 얼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건설현장 노동자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이 하이닉스 청주공장의 건설노동자들이다. 대다수가 이 지역 사람이 아닌 듯 각양각색의 걸쭉한 사투리가 오가고 있는 모습이다.

밤 8시30분 밖에 되지 않은 시각인데도 벌써 거나하게 술에 취한 팀들이 대부분이다.

하이닉스 청주공장 건설현장 노동자라고 자신을 밝힌 한 남자는 취기가 오른 목소리로 "내는 한 달 하구도 반 동안 집에 몬갔다. 애들도 보구싶고∼"라며 넋두리를 늘어놨다.

그러자 같은 현장에 근무한다는 다른 사람은 "나는 집이 천안인데도 두 달간 집에 들르지 못했다"며 "일 때문에 집에는 못 가고 집 생각에 매일 이렇게 식당에 모여 객고를 푼다"고 푸념을 늘어 놓았다. 이어 "이 시간에 이 동네 식당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와 같은 현장 사람들"이라며 "우리는 이 동네에 숙소가 있어 거의 매일 저녁밥을 이 동네에서 해결한다"고 말했다.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와 청주농수산물시장 사이 대로변에 있는 식당가와 비하동 일부 식당가는 지난 4월 26일 하이닉스 청주공장 착공식 이후 본격적인 공사를 위해 투입된 하루 1500여명의 건설현장 근로자들로 저녁식사 시간에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충북도는 하이닉스 청주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8000여명의 고용효과로 이 지역 청년실업 해소와 더불어 지역경기가 활성화 될 것으로 전망한바 있다.

하지만 이 지역 식당들의 현재 성업중인 모습은 충북도의 이러한 예상이 기분좋게() 빗나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충북도가 예상한 하이닉스 청주공장 가동 후의 장밋빛 전망에 앞서 식당 등 요식업소는 벌써부터 소위 '하이닉스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 이호영씨(35·봉명동)는 "현대아이파크와 원룸 촌이 들어서는 걸 보고 식당을 개업했다"며 "그러나 지난해 말까지는 생각한 만큼 장사가 되지않아 문을 닫으려고 고민했었는데 두 세달 전부터 건설현장에 근무하시는 분들이 찾아오기 시작해 요즘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하이닉스 효과'는 비단, 식당 등 요식업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봉명동과 복대동 등에는 주택가가 형성될 당시 지어진 오래된 다세대 주택들이 상당수 비어 있었다. 그러나 하이닉스 등의 몇몇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방이 넓으면서도 임대료가 저렴한 이 지역의 다세대 주택을 임차해 사용하고 있어 부동산 경기에도 '하이닉스 효과'가 톡톡히 미치고 있다.

공인중개사 장진우씨(35)는 "이 지역은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 대부분이어서 임대가 잘 나가지 않는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방을 내놓자마자 건설현장 근로자들에게 금방 나가는 편"이라며 "보증금이 거의 없어도 월세를 조금 더 받기 때문에 집주인들이나 세입자들 모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선 4기 충북도가 사활을 걸고 유치한 하이닉스의 '효과'가 벌써부터 이 지역 경제에 봄바람을 몰고 왔다. 업계에서는 과거 건설경기가 지역경제를 견인했던 경험에 비춰 지금의 현상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공장완공에 맞춰 예정대로 8000여명의 신규고용이 확정된 후의 본격적인 '하이닉스 효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 요식업소가 아닌 충북도가 반색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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