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삶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그녀가 삶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19.04.24 2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작가다. 칼데콧 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비밀의 화원>과 <세라 이야기>의 일러스트를 그린 화가로, 지난 70여 년간 100권이 넘는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백악관의 크리스마스카드나 엽서에도 사용되는 그녀의 그림은 미국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평을 받아왔다.' 이 글은 그녀의 책에 붙은 작가 소개의 말 중 일부다. 여기까지 읽으면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대답은 글쎄... 조금 더 읽어보자.

`하지만 그녀는 독특한 라이프스타일로 더 유명하다. 90세를 넘긴 나이에도 동화보다 더욱 동화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버몬트 주 시골에 집을 짓고 30만평이나 되는 대지에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살았던 그녀, 그녀는 손수 천을 짜서 옷을 만들고, 염소젖으로 요구르트를 만든다. 19세기 생활을 좋아해서 골동품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골동품 가구와 그릇을 쓰고, 장작 스토브로 음식을 만든다. 우울하게 지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이 부지런한 할머니는 마리오네트 인형들을 만들어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을 공연하고 직접 키워 말린 허브를 끓여 오후의 티타임을 즐긴다.'

이제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녀의 이름은 타샤 튜터. 그녀는 1915년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타샤 튜터의 집안은 헨리 소로, 마크 트웨인, 에머슨 등 유명인사와 친문이 있는 명문가였다. 하지만 그녀는 사교계로 진출하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기대와 달리 농사를 짓거나 우유를 짜는 등 시골에서의 삶에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그녀는 2008년 죽을 때까지 시골에서 정원을 가꾸며 살았다. 그녀가 30년을 가꾼 정원은 18세기 영국식 빅토리안 정원으로 전 세계 원예가들이 주목하는 명소이다. 직접 씨를 뿌리고 키워낸 꽃 중에는 원래 가꾸기 어렵다는 1930년 품종 장미도 있다고 하니, 그녀의 정원사랑은 참으로 지극하다. 정원이 곧 그녀이고, 그녀가 곧 하나의 정원이었다.

내게도 나만의 정원이 있다. 연구실 창틀에 올려놓은 길이 50센티미터 짜리 플라스틱 화분 두 개가 그것이다. 3월 중순 겨울을 난 튤립 구근에 싹이 올라왔다. 튤립은 화분 가득 약 스무 개를 밀식해서 심었다. 색깔은 다양하게 심었는데, 빨강, 노랑, 보라 등 색도 꽃봉우리 모양도 달라서 그야말로 형형색색이었다. 3월 말 개화한 꽃은 꽃샘추위를 며칠 겪느라 애를 태웠는데, 한 송이도 얼어 죽지 않고 꽃대를 더 꼿꼿이 세웠다. 그러고는 거의 한 달, 지는 해가 길게 내리쬐는 연구실 창가에서 어여쁜 색감으로 봄을 만끽하게 해주다가 오늘, 모든 꽃잎을 떨궜다. 꽃잎 떨어진 자리에 이제 무엇을 심어야 할까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늦가을까지 열심히 꽃을 피울 임파치엔스나 피튜니아를 심어야 하나, 백일홍, 수레국화, 과꽃, 코스모스 등 씨로 가꾸는 한해살이 1년 초를 가꾸어 볼까? 가을에 넘실거릴 분홍 풀 핑크뮬리를 심어볼까? 몽땅 해봐야 손바닥만 한 정원인데도 즐거운 상상이 한 가득이다.

타샤 튜터는 평생 정원을 가꾸는 그것이 실은 자신을 보존하는 일이었다고 고백하였다. 정원을 통해 자신을 가꾸며, 그에 걸맞는 삶을 사는 것, 정원을 가꾸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은 구별하고 사는 삶, 그것이 타샤가 몸으로 써주고 간 자서전일지 모른다.

이 찬란한 봄의 끝에, 이제 어디에 씨를 뿌려도 얼지 않는 이 좋은 절기에 나만의 정원에, 우리집 텃밭에, 우리학교 화단에 꽃씨를 뿌려보면 어떨까? 한해 곱게 꽃을 가꾸며, 내 영혼도 그리 고와지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