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할의 바람
팔 할의 바람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19.04.2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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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화창한 봄날 버스 안, 문우들과 함께 문학기행을 가는 길이다. 고창에 있는 서정주문학관에 들러 현대시의 거장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의 발자취를 둘러보고, 선운사, 청보리밭을 들렀다 올 예정이다. 차 창밖으로 만개한 벚꽃과 이제 막 연초록 잎을 피워내는 여린 가지들이 스쳐 지나간다. 흥에 겨워서 나는 아까부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아담한 폐교를 개조해 만든 서정주문학관에 들어서니 반짝이는 언어들이 마중해준다. 전시실을 둘러보던 중, 작가가 쓴 친일 작품 앞에서 발길이 멎었다. 문학사적 업적과는 별개로 친일 행적이 논란되어 온 건 알고 있었지만, 방 하나에 쭉 걸려 있는 시와 소설, 수필을 읽어보니 생각보다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에 좀 놀랐다. `종천친일파(從天親日派)'라는 자기변명의 글을 읽고 나선 마음이 복잡해졌다. 자기합리화랄까? 감당해야 할 만큼의 무게조차 털어버리려는 비겁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토록 주옥같은 언어를 풀어내는 능력으로 왜 이런 실망스러운 선택을 했을까. 들어올 때와 달리 찜찜한 기분으로 문학관을 나왔다.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순 있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제 몫으로 떠안아야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스님은, 전생의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고, 이번 생을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내생이 결정된다고 했다. 결국,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한 대로 흐르는 것이니, 변명도 원망도 말고, 그저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동감 백배다.

점심을 먹고, 구름도 잠시 쉬어간다는 선운사를 거쳐 청보리밭으로 갔다. 30여만 평이나 되는 드넓은 언덕이 온통 초록 물결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탄성을 지르며 보리밭에 들어가 삼삼오오 사진 찍기 바쁘다. 나는 밭 가운데로 구불구불 나 있는 산책길을 따라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헤엄쳐 들어갔다. 바람이 분다. 보리 잎이 바람에 밀려 파도처럼 일렁인다. 청보리가 되어 눈을 감고 가만히 바람을 느껴본다. 기분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겨우내 밟혔던 보리를 일으켜 키워준 건 어쩌면 바람일지 모르겠다. 바람이 불어오면 보리이파리들은 눕는다. 꺾이지 않으려고 힘을 빼는 것이다. 수천만 번을 누웠다가 일어서면서 안으로는 점점 더 단단한 씨앗을 품었으리라. 미당의 시 `자화상'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궁색한 핑계일 뿐이다. 보리는 바람을 타고 흔들릴지언정 제 누울 자리를 마련코자 동료를 넘어뜨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또 한차례 바람이 불어온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기보다 만나고 돌아가는 바람같이 무심하게 지나쳐간다.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올려다오'간청하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항아리에 그득하던 꽃과 향기 싹 비워내고 주위를 맴돌아, 자꾸 맴돌아 청보리 빛 물이 든 바람이, 임 오면 따려고 제일 좋은 전복은 바다 밑에 남겨둔다는 제주 해녀처럼 소박한 시심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어느새 머리에까지 번져 이마에 맺힌 땀을 시원하게 말려주고 간다.

텅 빈 백자 항아리 끌어안은 채 그대, 혹 여기에 회한의 바람으로 남았는가? 청보리 키우는 팔 할의 바람이 되어 못다 한 책임 감당하고 있는 것인가.

국화꽃 필 때 한 번 더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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